9월의 과학사: 두 얼굴의 태양

 1859년 9월 1일 오전. 영국의 천문학자 리처드 캐링턴은 평소처럼 태양을 관찰하며 흑점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던 순간 평소와 다르게 굉장히 밝게 빛나는 흑점을 발견했고 그 모습을 그대로 기록하게 된다. 캐링턴이 흑점에서 일어난 기현상을 기록하고 약 18시간 만에 지구는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된다. 관측 기록 사상 가장 거대했던 태양 지자기폭풍이 지구를 덮쳐 온 것이었다.

캐링턴이 직접 기록한 흑점의 그림. 흰색 부분의 밝게 빛난 부분이다.



 이 지자기폭풍은 한밤중에도 낮처럼 밝은 빛을 내뿜었다. 남극과 북극 주변에만 나타나던 오로라가 플로리다, 쿠바, 하와이같은 지역에서도 관측이 되었다. 유럽과 북미 지역의 통신망이 마비되었으며 전신주에 스파크가 튀는 등 전자 기기들에 커다란 충격이 있었다. 당시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전신 운영 시스템이 잠시 정지되었으며 심지어 감전사고까지 발생했다. 반대로 전원이 끊겼음에도, 태양 폭풍으로 만들어진 전류에 의해 통신이 연결되는 황당한 경우까지 나왔으니 그야말로 온 지구가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이 사건을 현재는 발견자인 캐링턴의 이름을 따서 캐링턴 사건(Carrington Event)라고 부르고 있다.

 ‘캐링턴 사건’같은 현상은 1859년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오로라가 극지방을 넘어 다른 지역에서 관측된 현상은 그 이전에도 자주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무려 삼국사기에 오로라 관측 기록이 남아있으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여러 사료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 2003년에는 보현산 천문대에서 오로라를 포착하기도 했다. ) 전 세계적으로 과거 오로라 관측은 매우 이상한 현상이었으며 종교적으로 바라보거나 두려움의 대상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보통 과학적 지식이 부족했던 과거의 인식은 현재 시점으로 봤을 때 전혀 두려울 것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사건 만큼은 지금 기준으로 바라봐도 공포스러운 현상이라는 점이다.

우주정거장에서 촬영한 오로라의 모습



 캐링턴이 흑점을 통해 이변을 발견했던 것처럼 이 사건의 범인은 바로 태양이었다. 지구에 자기장이 있는 것처럼 태양 역시 표면에 무수히 많은 자기력선이 존재하고 있다. 문제는 태양의 자전 속도가 위치별로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생성된 자기력선이 꼬이는 현상이 생긴다는 점이었다. 이 과정에서 자기력선이 많이 모인 위치는 온도가 내려가 상대적으로 검게 관측이 된다. 이것이 흑점인 것이다. 흑점은 강한 자기장을 품고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 에너지가 바깥으로 뿜어져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 순간 태양의 대기(코로나)에서 엄청난 물질이 우주공간으로 퍼져 나오게 된다. 이 현상을 CME(코로나 질량 방출) 이라고 부른다. 마치 태양이 우주 공간에 무작위로 대포를 발사하는 것 같은 CME는 당연하게도 지구에 큰 영향을 준다.

CME가 지구 자기장에 영향을 주는 상상도



 이러한 CME 현상은 굉장히 자주 일어나는 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뿜어내는 물질은 지구 자기장에 도달하여 오로라 현상을 발생시킨다. 오로라를 보러 떠나는 여행은 사실 태양에서 날아온 물질 포탄에 지구가 맞아 생긴 흔적을 보러 가는 것이다. 사실상 지상에 있는 우리에게 이 물질이 날아오는 경우는 없다. 그런 관계로 우리 몸에 직접적인 건강상의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은 다행이다. 문제는 우리 몸이 아니라 저 하늘과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기계들이다. 캐링턴 사건 당시 전신이 끊겼으나 어마어마한 피해로 연결되지 않은 것은 아직 기술이 활성화가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전 세계가 통신망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당장 우리의 주변 곳곳에 있는 것이 전자기기이다. CME가 충격을 주는 것은 바로 이 전자기기인 만큼 피해가 커지면 커졌지 절대 작을 수 없다. 1989년 3월에 일어난 지자기 폭풍 현상은 캐나다 퀘벡 지역의 대규모 정전 사태를 발생시켰으며 유럽과 러시아, 미국에 통신 장애 현상을 만들었다. 2003년 10월에는 (앞서 언급한 보현산 천문대에서 오로라를 촬영한 시기이다.) 여러 인공위성의 통신이 두절되었다가 복구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올해 2월 발사된 스타링크 위성 49기 중 40기가 지자기폭풍에 의해 떨어져 대기권에 불타 없어지는 사건이 있었다.



 이처럼 현재 전 지구는 과거와 달리 태양에서 날아온 폭풍에 점점 더 취약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2013년 미국 대기환경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캐링턴 사건과 같은 강도의 현상이 벌어질 경우 지구에 2조 6천억 달러에 가까운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나와 있다. 기본적으로 통신망 및 인터넷은 높은 확률로 손상되고, 전력이 차단되며 해저 케이블이 고장난다. 추가적으로 인공위성에 장애가 생겨 GPS 시스템이 망가진다. 이는 항공, 교통, 물류 등의 산업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태양에서 날아오는 강한 방사선은 우주인에게 치명적이다. 평상시 우주정거장 역시 지구 자기장의 보호를 받고 있지만 지자기 폭풍이 발생할 경우 그 보호막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하기 힘들다.

 자주 일어난다고 했던 CME 중 지구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캐링턴 사건 같은 일은 어느 정도 주기를 가질까. 그린란드 빙하 속에 남은 지자기폭풍의 흔적을 조사한 결과 캐링턴 사건급의 폭풍은 약 500년에 한 번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렇다면 사건이 일어난 지 약 200년 정도만 지났으니 우리는 안전할까. 2012년 7월. 캐링턴급 폭풍이 태양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 폭풍의 방향과 지구의 위치 차이는 고작 9일 정도였다. 아주 아슬아슬하게 직격을 피한 덕분에 큰 피해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2012년에 발생한 CME의 모습



 물론 인류가 이러한 재난에 손 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각 나라별로 우주전파를 감지, 분석하며 예보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우리나라 역시 2011년에 건립된 우주전파센터를 통해 태양을 주시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예보를 통해 비행기의 항로 조정, 인공위성의 전자 장비 점검 등의 안전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비나 눈이 오는 것을 기상청을 통해 아는 것처럼 태양을 쳐다보는 우주 기상청이 존재하는 것이다.

제주도에 위치한 우주전파센터의 모습



 2009년 개봉한 영화 ‘노잉’에서는 태양에서 발생한 슈퍼 플레어가 지구에 영향을 주는 재난을 다루고 있다. 물론 영화처럼 극단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어렵겠지만 태양의 분노가 언제 우리에게 다가올지, 현재 예보 기술로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구 생명체가 받는 모든 에너지의 근원인 태양이 가진 정반대의 얼굴. 어쩌면 인류에게 가장 큰 위협은 지상이 아닌 머리 위에서 빛나는 저 태양이 될지도 모른다.

참고자료

1. 국립 전파연구원 우주전파센터
2. 이성규. (2021). 태양폭풍 오면 인터넷 대재앙 일어난다. Sciencetimes
3. 김진호. (2018). [우주재난] 절반만 맞는 우주 날씨예보, 정확도 높인다. 동아사이언스
4. 채유진. (2021). 태양폭풍, 439년 전 조선사람도 목격했다. SPUTNIK
5. Tony Phillips. (2014). Near Miss: The Solar Superstorm of July 2012. NASA SCIENCE
6. Chris Gebhardt. (2020). Carrington Event still provides warning of Sun’s potential 161 years later. NASA spacelight.com
7. Deborah Byrd. How likely is another Carrington Event?. EarthSky
8. Christopher Klein. (2018). A Perfect Solar Superstorm: The 1859 Carrington Event. H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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