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발전시키는 질문 – 천문학 역설 이야기 2

“Science cannot solve the ultimate mystery of nature. And that is because, in the last analysis, we ourselves are a part of the mystery that we are trying to solve.”

과학은 궁극적인 자연의 신비를 풀 수 없다. 마지막 해석 순간에도 우리 자신이 우리가 풀려고 하는 그 신비의 한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막스 플랑크-


 양자역학의 성립에 핵심적인 기여를 했던 물리학계의 거목, 막스 플랑크의 발언이다. 이 말을 보면 그가 과학으로도 영원히 자연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이것이 진짜일지는 알 수 없지만 아직 과학이 ‘완벽’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입에 올릴 만큼 단단하지 않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사실이다. 여전히 빈틈이 있으며 그 빈틈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애초에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면 신문에 뉴스에 나오는 그 수많은 문제들이 왜 아직도 우리 앞에 건재하게 있을 수 있겠는가.

 지난 시간부터 살펴본 역설 역시 마찬가지이다. 벤틀리의 역설이나 올베르스의 역설은 긴 시간을 건너 그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이처럼 해결에 성공한 역설은 또 다른 과학적 발전을 가져온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또한 많이 존재한다. 오늘 살펴볼 역설은 과학으로 아직 해결하지 못한 역설들이다. 과연 어떤 역설이 우리의 ‘과학’에 맞서 그 혼란함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일까.

페르미의 역설 그래서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탈리아 출신의 물리학자인 엔리코 페르미는 1900년대 초중반 최고의 실험 물리학자이자 이론물리학자였다. 실험이나 이론 둘 중 하나도 두각을 나타내기 힘든 일인데 둘 모두에서 엄청난 업적을 남긴 그는 학자로서 완전체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양자역학, 핵물리학 부분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기고 있던 그는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핵폭탄 개발 계획인 맨하탄 프로젝트의 중심인물 중 한 명이었다.

엔리코 페르미의 모습


 그렇게 대단한 업적을 남긴 페르미는 엄청난 직관력으로도 유명했다. 지금은 ‘페르미 문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질문을 통해 간단한 정보와 지식을 이용하여 수학적으로 어느 정도 정확도를 가진 결과값을 이끌어냈다. 대표적으로 트리니티 핵폭탄 실험에서 종이조각을 이용해 핵폭탄 위력을 근사한 경우가 있다. (종이조각이 충격파에 날아가는 거리를 이용하여 위력을 계산했었다. 그는 10킬로톤으로 추정하였으나 실제는 20킬로톤 즈음이었다. 차이가 좀 있어 보이지만 페르미에게 주어진 것은 종이조각 뿐 이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1950년 <뉴요커> 지에 실린 앨런 던의 만화. 외계인이 쓰레기통을 가져가는 모습이다.


 이런 직관력을 가진 페르미가 1950년 여름, 동료 학자들과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 당시 신문에는 뉴욕에서 벌어진 쓰레기통 실종 사건에 대한 내용과 UFO 출현 사건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동료 학자들이 이 정체불명의 UFO 이야기를 하고 있던 그때, 페르미가 이상한 질문을 하나 던진다.

‘모두 어디 있지?’


페르미의 이 질문은 그래서 그 UFO를 탄 외계인은 어디 있냐는. 아주 간단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질문의 파급력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미 국방부가 공개했던 UFO의 모습


 상상을 초월하게 거대한 우주 속에 문명을 가진 존재가 우리뿐인가? 아니라면 그들은 어디에 있으며 왜 우리는 아직 그들을 만나지 못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단순히 천문학계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인문학, 역사학, 종교학, 문학 등 온갖 방면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 결과 크게 3가지 결론이 등장했다.

 첫 번째. 이미 그 외계인은 우리 곁에 있다. 너무나 발전한 문명을 지닌 그들은 이미 지구를 인지했고 이곳에 왔었으며 지구를 관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의 문명이 그들에 비해 너무 낮아 외계 문명의 방문자들을 알아차릴 수 없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동물원에서 동물을 보는 것처럼 그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뜻인데 과연 그들이 왜 우리를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일까. 당연하게도 그에 대한 제대로 된 대답은 없다.

영화 맨인블랙(1997)의 포스터. 이 영화는 외계인이 이미 우리 곁에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번째, 외계 문명과 우리는 너무 멀어서 현재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주의 크기가 무척이나 거대하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장 태양 다음으로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도 현재 인류가 살아서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계 문명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우리가 찾아갈 수 없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를 찾아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보낸 흔적 역시 만날 수 없는 것인가? 우리가 전파를 이용하여 통신을 하듯 그들 역시 문명을 이뤄 전자기파 종류를 통신에 사용한다면 그때 사용된 신호가 지금 우주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거리가 멀면 멀수록 줄어드는 세기를 생각하면 아직 우리 기술로 그 흔적을 찾기 어려운 것일 수 있다.

허블 망원경이 촬영한 프록시마 센타우리의 모습. 지구에서 약 4.22광년 떨어져 있으며 보이저 탐사선의 속력으로 출발해도 도착까지 7만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세 번째, 외계 문명 같은 것은 없다. 이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한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많은 요인이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구의 위치, 목성의 존재, 태양의 에너지양, 궤도의 이심률, 자기장 및 대기의 존재, 달과 같은 위성은 존재. 이 밖에 수많은 이유가 지구에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것에 도움을 주었다. 그렇다면 이와 똑같은 환경이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 확률은 얼마인가. 또 그런 환경 속에서 생명체가 꼭 탄생하여 문명을 이뤄야 하는가. 그리고 만약 그 행성에서 문명이 탄생했다면 아직도 지속되고 있을 것인가? 확률 계산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문제가 되었다.

제임스 웹이 최근 정밀 분석한 외계행성 K2-18b의 상상도. 제임스 웹의 관측을 통해 행성의 대기 아래 바다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하지만 이 발견이 ‘우리와 의사소통 가능한 외계 문명’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페르미의 역설이 대두된 이후 외계 문명을 탐사하기 위한 천문학자들의 노력은 계속해서 있어왔다. 전파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는 드레이크 방정식으로 알려진 수식을 통해 우리 은하 내에 교신 가능한 외계 문명의 수를 알아내려 했다. 사실 이 방정식에 존재하는 모든 항은 다 확률이며 계산하는 사람의 주관이 강하게 반영된다. 또한 마지막 항인 L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아무리 대단한 문명이어도 그 지속 시간이 짧으면 우리와 마주칠 가능성 역시 떨어질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 우주에 혼자인 것인가?

드레이크 방정식. 왼쪽의 N이 외계 문명의 숫자이다. 그리고 오른쪽 마지막의 L항은 문명이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을 뜻한다.


 페르미 역설의 해답은 우리가 정말 외계 문명을 찾기 전까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우주 어딘가에 있는 외계 문명을 찾기 위해 손을 휘젓다 보면 우리 문명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게 되는 결론을 마주하는 경우가 많다. 길고 긴 우주의 역사 속에 티끌만도 못한 존재일지 모를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남아 페르미의 질문에 ‘그들이 있다.’라는 대답을 남기게 될지, ‘그들이 있었다.’라는 대답을 남기게 될지. 그 결말은 어쩌면 우리 생애 안에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허블 울트라 딥필드 사진. 저 많은 은하 속에 과연 문명을 이룬 생명체가 단 하나도 없을 것인가.


블랙홀 정보 역설 – 물리학의 주춧돌에 설치된 초대형 폭약

 2018년 세상을 떠난 스티븐 호킹은 루게릭병에 걸리고도 물리학 연구를 놓지 않아 많은 업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단순히 병을 이겨낸 인간 승리만이 그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가 블랙홀, 우주론 연구에 기여한 바는 상당히 크며 그 과정에서 물리학의 근간을 뒤흔들 파괴력을 가진 역설을 만들어냈다. 그 이름하여 블랙홀 정보 역설. 이를 이해하려면 ‘정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스티븐 호킹의 모습


 우리가 생각하는 정보는 어떠한 물건의 길이, 두께 같은 물리적 수치나 그 안에 담긴 글씨로 전해지는 내용을 떠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쓰이는 정보는 조금 다른 개념을 가진다. 흑연과 다이아몬드는 신기하게도 모두 같은 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단지 탄소들이 결합된 방식의 차이 때문에 어떤 것은 연필에 들어가고 어떤 것은 손가락에 반지로 들어갈 뿐이다. 이 탄소 원자에는 전자가 얼마가 있는지 질량이 얼마나 되는지 등의 정보가 담겨 있다. 그리고 탄소 원자가 흑연이 되었건 다이아몬드가 되었건 그 정보는 절대 변하지 않으며 나중에 다른 물질로 변하게 되어도 과거에 흑연처럼 결합되어 있었다거나 다이아몬드처럼 결합되어 있었다는 정보 역시 저장되게 된다. 이 말은 곧 입자 안에 담긴 이 ‘정보’를 모두 해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과거의 모습으로 복원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뜻이 된다. (불에 타버린 책의 재를 모아 다시 책으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와 흑연의 탄소 결정 구조


 이처럼 정보가 보존된다는 것은 물리학에서 아주 중요한 법칙이 되었다. 그런데 이 정보 보존 법칙에 위협을 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블랙홀인 것이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블랙홀을 질량, 각운동량, 전하량으로만 구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내용을 과학자들은 무모정리(no-hair theorem)으로 부르는데 이 정리에 따르면 블랙홀이 과거에 어떤 별이었는지 다른 물리량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일단 블랙홀 안에 우리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정보가 들어있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문제는 호킹이 주장한 호킹 복사였다.

호킹 복사의 모식도. 사건의 지평선을 기준으로 입자가 만나지 못하고 나눠지는 모습이 보인다.


 양자역학에서는 진공 속에서도 전자와 양전자가 끊임없이 만들어지면서 서로 소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양자 요동이라 불리는 이 현상이 블랙홀 주변에서 벌어질 때 문제가 생긴다. 생성과 동시에 둘이 합쳐서 소멸해야 하는 상태인데 만약 한 쪽은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 안쪽에 있고 나머지 반쪽은 그 바깥에 있다면? 당연히 사건의 지평선 안쪽에서 생성된 것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소멸되지 못한 나머지 입자는 블랙홀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데 이때 에너지 보존 법칙을 지키기 위해 블랙홀의 질량이 줄어들게 된다. (간단하게 블랙홀이 두 입자를 만나지 못하게 한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내용대로 블랙홀의 질량은 서서히 줄어들게 되며 언젠가는 사라지게 된다. 과연 블랙홀이 사라질 수 있는 존재라면 그 안에 들어간 정보는 어찌되는 것인가?

 1970년대 호킹 복사 이론을 발표한 이후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던 그는 1980년대가 되어 EST라는 학회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장소는 주최자의 집 다락방이었다. 1983년 열린 모임에서 호킹은 ‘블랙홀이 증발할 때 정보가 없어진다.’라고 주장했다. 이때 현장에 있었던 학자들 대부분은 이 주장의 중요성을 바로 인식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곧 블랙홀 정보 역설은 양자역학이 받은 커다란 도전 중 하나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블랙홀 상상도


 정보의 손실이 사실이라면 ‘정보 보존의 법칙에 위배된다.’라는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정보가 사라지게 되면 미래, 과거에 연결된 인과 관계 역시 사라진다는 뜻이 된다. 정보 없이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며 과거 역시 알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호킹 역시 이를 인지했으며 그가 이 문제를 주장한 논문의 제목은 “중력 붕괴 과정에서 예측 가능성의 실패”라고 적혀 있다. (수정 전 제목은 “중력 붕괴 과정에서 물리학의 실패”였다고 하니 호킹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이 문제를 막기 위해 블랙홀 속으로 들어간 정보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간다거나, 우리가 해석할 수 없는 형태로 다시 빠져나온다 등 여러 이론이 등장했다. 그중 호킹의 눈에 든 이론은 ‘블랙홀 상보성’이라는 이론이었다. 이 주장은 간단하다. 정보가 블랙홀로 들어가면서 거꾸로 호킹 복사를 타고 방출된다는 것이다. 아직 우리가 해석은 힘들지만 호킹 복사 안에 정보가 남아있다면 사라지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다. 다만 정보가 복사되면서 총 정보량이 늘어나버리고 만다. 이 부분을 블랙홀 내부와 외부에서 서로를 확인할 수 없으니 괜찮다는(늘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상보성의 원리로 설명한 것이다.

 2004년, 호킹은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며 블랙홀 정보 역설이 해결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전 칼텍의 물리학자 존 프레스킬과 이 문제를 걸고 한 내기에서 자신이 졌다고 인정한 것이다. 다만 호킹과 함께 정보 역설은 해결할 수 없다고 했던 학자 킵 손은 이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다른 과학자들 역시 시원한 해결책이 나왔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결국 그 어느 누구도 만족하기 힘든 찝찝한 마무리가 된 것이다.

스티븐 호킹이 존 프레스킬에게 내기의 패배를 인정하면서 ‘야구 백과사전’을 선물로 주는 모습


 블랙홀 정보 역설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한판 승부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므로 끈이론 같은 새로운 이론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두 이론을 묶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존재한다. 과연 각각 수많은 증명을 통해 입증된 두 이론이 하나로 합쳐질 수 있을 것인가? 호킹이 남겨 준 숙제는 어쩌면 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바꿀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과학을 함에 있어서 문제점을 찾는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책을 찾아야 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길을 찾게 된다. 그런 면에서 역설은 과학의 좋은 기폭제가 된다는 점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과연 그 답이 인류를 어디로 보내 줄 것인가. 어느 방향이 되었건 그 결과가 또 다른 ‘발전’이 되기를 기원해 보자.

참고 문헌

  1. 스티븐 웹 (강윤재 역). 2005. 모두 어디 있지?. 한승
  2. 레너드 서스킨드 (이종필 역). 2011. 블랙홀 전쟁. 사이언스북스
  3. 키티 퍼거슨 (이충호 역). 2013. 스티븐 호킹. 북하우스
  4. 이상헌, 염동한. 2020. 블랙홀 정보손실문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물리학과 첨단기술
  5. 이필진. 2018. [호킹, 별이 되어 떠나다] 호킹이 남긴 21세기 이론 물리. 동아사이언스
  6. 조송현. 2018. 스티븐 호킹의 유산 ②블랙홀 정보 역설. 인저리타임
  7. 김봉수. 2021. “블랙홀은 대머리”…아인슈타인 가설은 옳았다[과학을읽다].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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