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과학사: 지구는 푸르다

 냉전 시대, 전 세계는 두 조각으로 나뉘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충돌이 이어지던 이 시기에 패권을 놓고 싸우던 미국과 소련은 지구가 아닌 곳, 우주에서 또 다른 전쟁을 시작했다. 뛰어난 과학 기술력과 거대한 자본 등 나라 전체 역량을 걸고 시작된 이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은 소련이었다.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 발사로 반대 진영에 큰 충격을 안겨준 소련은 1961년 4월 12일. 자신들의 우위에 쐐기를 박을 한 방을 준비한다. 그것은 최초의 유인 우주선 발사였다.

젊은 유리 가가린의 모습 (사진 출처 : 구글)
우주선에 탑승해 있는 가가린의 모습 (사진 출처 : BBC)

 유인 우주 비행은 소련에서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인공위성 발사 이후 미국과 소련 모두 인간을 우주로 보낸다는 목표 아래 여러 실험을 진행하게 된다. 소련에서는 주로 개를 우주로 보냈다. ( 훈련 시키기 편하다는 것이 개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 1957년 최초로 우주에 나간 생명체로 알려진 라이카를 시작으로 1960년 스트렐카와 벨카라는 이름을 가진 개 두 마리가 궤도 비행을 한 후 살아서 지구로 복귀했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원숭이로 테스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류와 비슷한 영장류인 침팬지 햄이 우주 비행 후 살아서 귀환한 것이다. 초기에 비해 상승한 생존률에 이어 방사선에 의한 피폭 영향이 없다는 점이 밝혀졌으니 다음 단계로 나아갈 차례였다.

최초 우주에 나간 동물인 라이카의 모습. 라이카는 발사 과정에서 벌어진 기기 고장으로 쇼크사하고 만다. (사진 출처 : AFP)
우주 비행 이후 지구에 돌아온 침팬치 햄의 모습 (사진 출처 : NASA)

 양측은 생명체 발사 실험과 동시에 이미 유인 우주선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보스토크 계획으로 불린 소련의 계획은 수천 명의 비행기 조종사들을 20명으로 추려냈다. 이들 20명 중에서도 혹독한 훈련 끝에 6명의 최종 후보가 선출되었는데 이 안에 서른 살도 되지 않은 유리 가가린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우주인 양성 작업은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인공위성 발사를 선점하지 못한 미국은 재빠르게 머큐리 계획이라고 불린 유인 우주선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렇게 선정된 7명의 1기 우주인들은 머큐리 세븐이라 불리며 순조롭게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소련의 최종 우주인 후보 6명의 모습. 왼쪽 3번째에 가가린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출처 : 스미소니언 매거진)
미국의 최초 우주인 1기 머큐리 세븐의 모습. 뒷줄 맨 왼쪽 인물이 최초의 미국 우주인인 앨런 셰퍼드이다. (사진 출처 : NASA)

 우주인 훈련 및 선정에는 아주 엄격한 기준이 부여되었다. 기본적인 키, 몸무게 제한부터 시작하여 시력, 청력 등 문제가 될만한 구석은 모두 걸러냈다. 이후 선발된 인원들은 원심력 훈련, 집중력 훈련, 무중력 훈련에 이어 소리까지 차단한 무음실에서 홀로 버티는 훈련까지 진행하게 되었다. ( 당시에는 1인 우주선이었기 때문에 같이 타는 동료가 없었다. ) 이러한 혹독한 훈련을 거친 우주인들은 모두 ‘최초의 우주인’이라는 타이틀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양 측 모두 누가 제일 첫 번째 우주선에 탑승하게 될지 큰 관심사가 되었다.

 물론 그 중 소련의 훈련 진행 상황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있었다. 6명의 최종 후보 중 최후의 1인을 선정하는 것에는 훈련 성적 뿐 아니라 외부적 요인도 작용하였다. 최종 후보 6인은 모두 뛰어난 훈련 성적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출신 지역, 정치적 성향 등 추가적인 요소가 개입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뽑힌 것이 노동자 집안의 자식이었던 유리 가가린이었다. ( 물론 가가린은 훈련 성적도 매우 우수했고 동료들의 평판도 좋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이처럼 수많은 요소가 혼합된 소련의 우주선 보스토크 1호는 미국의 최초 유인 우주선인 프리덤 7호의 발사 예정일(1961년 5월 5일)보다 약 3주 가량 앞선 4월 12일에 발사대에 오르게 된다.

가가린과 함께 최종 6인 후보에 있었던 파벨 포포비치. 그가 최종적으로 선정되지 못한 이유에는 러시아인이 아닌 우크라이나 출신이라는 점이 컸다. 이후 보스토크 4호를 타고 우주에 나가게 된다. (사진 출처 : 위키)
가가린과 최종 후보에 올랐다고 알려진 게르만 티토프. 그는 최초의 우주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보스토크 2호를 타고 우주에 올라 처음 지구를 1회 이상 선회한 우주인이 되었다. (사진 출처 : 위키)

 발사 이후 가가린이 한 모든 행동은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게 된다. 최초로 무중력을 체험했으며 첫 번째로 우주에서 음식을 먹은 인간이 되었다. 물론 우주선 조종의 경우는 모두 지상에서 제어했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지구를 바라보며 언급한 ‘지구는 푸르다’라는 말은 전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전하기 충분했다. 보스토크 1호의 108분 비행이 전부 성공적으로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지구로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서 착륙선 모듈이 제대로 분리되지 않아 빠른 회전을 시작했다. 예상보다 높은 중력가속도로 인해 인류 최초 우주인에서 첫 우주 사고 피해자로 변할 위기가 찾아 온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대기권 진입으로 인한 열기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연결부를 녹여주면서 선체는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실제 착륙 위치도 예상 지점이 아닌 한 농장에 떨어졌다.)

착륙한 보스토크 캡슐의 모습. 착륙 당시 애초에 가가린은 안에 타고 있지도 않았다. (사진 출처 : 구글)

 착륙 과정에서도 가가린은 보스토크호를 끝까지 타지 않고 중간에 탈출하여 낙하산으로 착륙하였다. 이 사실은 1970년대가 되어서야 밝혀졌는데 이는 공식 우주 비행으로 취급되려면 조종사가 우주선과 착륙해야 하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소련 측에서 숨긴 것이었다. 심지어 가가린의 자서전에서도 착륙을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

보스토크 1호(왼쪽)와 프리덤 7호(오른쪽)의 발사 장면 (사진 출처 : NASA)

 유리 가가린의 비행 이후 미국 역시 예정대로 앨런 셰퍼드를 태운 프리덤 7호를 발사한다. 최종적으로 성공했지만 이 비행은 소련의 보스토크호와 달리 탄도 비행으로 지구 주변을 비행했다기보다 공중에 올라갔다 내려온 정도의 개념이었다. ( 실제 비행시간도 15분이 약간 넘었었다. ) 이처럼 상대방인 소련보다 기술적으로 밀리고 있다는 사실이 확실해진 미국은 연이은 패배를 만회할 한 방을 같은 해 발표한다. 달에 사람을 보내는 계획. 아폴로 프로젝트였다.

 가가린의 성공 이후 소련의 우주 개발 전쟁 역사는 연이은 실패와 국가의 붕괴로 마무리되고 만다. 전 세계적인 인기와 함께 진영을 가리지 않고 순방을 다니던 가가린 역시 1968년 훈련 비행 도중 추락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하늘의 별이 된 가가린은 2010년대가 되어서도 러시아인들이 생각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자국 인물 1위에 뽑힐 정도로 위상이 대단하다. 그리고 그가 처음 우주에 다다른 4월 12일은 2011년 국제 우주의 날로 선정되었고 러시아에서는 아예 기념일로 지정해놓고 있다. 이처럼 모든 우주인의 출발점이자 조상 격인 유리 가가린은 국적, 이념 등 다양한 갈등을 넘어 인류에게 하나의 목표점을 보여준 이정표가 되었다. 긴 시간이 흘러 인간이 달, 화성 등 다른 곳에 깃발을 세워 놓더라도 그 모든 여정의 문을 연 첫 주자가 가가린이었음은 절대 잊혀지지 않는 전설로 남을 것이다.

아폴로 15호의 우주인들이 달에 남겨놓은 알루미늄 판. 1971년 전까지 사망한 우주 비행사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그 안에 유리 가가린의 이름 역시 적혀있다. (사진 출처 : NASA)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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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smithsonianmag.com/smart-news/there-is-a-sculpture-on-the-moon-commemorating-fallen-astronauts-358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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