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속의 천문학 – 블랙홀 특집 –

 얼마 전 새로 나온 노래 제목을 보던 도중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살별’, ‘사건의 지평선’, ‘블랙홀’이라니! 너무나도 천문학적인 제목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심지어 지난 글을 쓰게 만든 오르트구름의 주인공인 윤하의 새 노래가 아닌가. 그 기념으로 이번에는 윤하의 신곡 3곡 중 두 곡에서 주 모티브가 된 천체. 블랙홀이 담긴 노래들을 알아보도록 하자.

griff black hole

 2021년 발매된 griff의 One Foot In Front Of The Other 앨범의 타이틀 곡이다. 2001년생의 젊은 영국 싱어송라이터인 griff를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 받게 만든 곡이라고 한다.

There’s a big black hole where my heart used to be

내 심장이 있던 자리에 커다란 블랙홀이 생겼어.

And I’ve tried my best to fill it up with things I don’t need

필요도 없는 것들로 채워보려 노력했지만

It don’t work like that no it’s not easy

그렇게 안돼. 쉽지 않아

To fill this gap that you left in me

네가 내게 남기고 간 이 구멍을 채우는게

 블랙홀에는 빨아들인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 노래에서는 구멍이라는 의미에 더 큰 비중을 둔 것 같다. 아무리 채우려고 해도 모든 걸 빨아들이는 블랙홀 때문에 이별의 아픔을 채울 수 없다는 느낌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블랙홀이 진짜 ‘구멍’이냐 라고 물어본다면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블랙홀의 초기 개념은 중력이 너무나도 강해 탈출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빨라진 천체이다. 실제로 별이 죽어 탄생하는 블랙홀은 굉장히 강한 중력과 압축된 질량을 가진 천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화자는 가슴 속에 큰 구멍이 난 것이 아니라 엄청난 한과 슬픔이 뭉쳐버린 덩어리가 생긴 것이 아닐까.

샤이니 블랙홀

 2015년에 발매된 샤이니 4집에 수록된 노래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이 노래의 작사가와 아이돌 노래 중 천문학과 가장 밀접하다고 알려진 ‘러블리즈-destiny’의 작사가가 동일인물이다.

시간마저 네게 빨려 드나 봐

나의 하루는 네 생각에 끝나

바로 그 순간 내 두 눈앞이 깜깜해

빛들 마저 삼켰어

어떻게 된 거야 내 눈엔 너만 보여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에서 빨려 들어갈 정도로 빠져버린 사람의 모습을 블랙홀로 비유하여 노래하고 있다. 블랙홀은 강한 중력으로 주변의 시공간을 왜곡시켜 시간의 흐름을 굉장히 이상하게 만든다. 블랙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시간이 느리게 흐르며 빛도 일정 경계선 (사건의 지평선)을 넘으면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든다. 시간과 빛을 이용한 가사만 살펴보면 마치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화자가 상대방에게서 빠져나오기는 그른 것 같다.

콜렉티브 아츠, 영민 블랙홀

 콜렉티브 아츠는 인디 싱어송라이터들의 모임으로 매번 참여하는 뮤지션이 달라지는 특이한 프로젝트 그룹이다. 그중 2019년 발매한 이 곡 역시 블랙홀을 사랑에 빠진 사람의 관점으로 다룬다.

넌 마치 나의 블랙홀

나 이대로 너에게로

내 모든 게 다 빠져들어 간다

I’ll be OK

너무 어둡지만 괜찮아

그 어떤 별보다 빛나는


 그냥 무난하게 사랑에 빠져서 헤어 나올 생각 자체가 없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신기한 가사가 하나 있다. 아주 어둡고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블랙홀인데 그 어떤 별보다 ‘빛나는’ 이라니? 사실 블랙홀은 그 어떤 별보다 밝은 천체라고 해도 무방하다. 블랙홀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빛은 사건의 지평선을 넘은 빛 뿐이다. 그 경계에서는 어마어마한 물질 마찰과 에너지 분출이 이어지고 있다. 은하에서 나오는 빛보다 은하 중심 거대 질량 블랙홀에서 나오는 빛이 더 강한 것도 가능하다고 하니 정말 과학적인 가사가 아닌가?

Muse – Supermassive Black Hole

 2006년 발매된 뮤즈의 4집 앨범 ‘Black Holes and Revelations’의 타이틀곡이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밴드인 뮤즈의 노래 중 손에 꼽히는 대표곡으로 알려져 있다.

(You set my soul alight)

넌 나의 영혼에 불을 질렀어.

Glaciers melting in the dead of night

빙하들은 한밤중에 녹아들어가고

And the superstars sucked into the supermassive

거성들은 거대질량블랙홀로 빨려들어간다.

 사랑에 상처를 받았지만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것처럼 빠져나올 수 없다는 내용의 가사인데 Supermassive black hole이라는 부분만 계속 반복되고 있다. 여기서 보면 별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내용이 묘사되어 있는데 실제로 그 모습은 그리 보기 좋지는 않다. 블랙홀의 중력에 잡힌 별은 긴 스파게티 모양처럼 늘어나게 된다. 그 와중에 별의 물질 중 일부는 블랙홀 주변을 감싸며 원반 모양을 만들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조석 파괴 현상(Tidal Disruption Event)라고 부른다. 심지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블랙홀에게 빨려 들어가는 불쌍한 별이 발견된 적도 있다고 하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윤하 사건의 지평선 / 블랙홀

 2022년 3월 30일에 발매된 윤하의 신곡이다. ( 3곡 중 나머지 하나인 살별 역시 ‘혜성’을 의미하는 순우리말로 천문학과 연관이 깊다. ) 어떤 가사로 우리에게 천문학적 감성을 일깨워줄지 살펴보자.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 빛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먼저 사건의 지평선 속 가사이다. 이별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모습을 다룬 노래인데 역시 그 묘사가 뛰어나다. 초신성 폭발로 별이 죽는다고 해도 그 마지막 빛이 빛나는 기간은 상당히 길다. 당장 티코 브라헤가 카시오페이아자리에서 신성을 발견했을 때 그 빛이 사라지기까지 무려 18개월이 걸렸다. 이처럼 찬란한 폭발은 그 끝 역시 길게 남기게 된다.

영원처럼 밝게 안녕, 지켜볼게

눈이 멀게 빛나는 black hole

두 번 다시 가까이서 볼 수 없어도

어둔 밤 하늘 속에서 너를 찾아낼 수 있어

오래 기억할게

 이번엔 블랙홀의 가사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 무엇보다 밝은 블랙홀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별이었던 것의 결말이라 할 수 있는 블랙홀을 기억한다는 것은 어쩌면 별을 기억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수많은 가스를 뿜어내어 다시 새로운 별의 탄생을 만드는 다른 별의 일생 주기와 다르게 블랙홀은 더는 새로운 별이 될 수 없다는 걸 떠올리면 좀 더 감정 이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블랙홀은 천문학에서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은 미지의 존재이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특성만으로도 대중 매체에서 소비되기에 아주 좋은 소재이다. 모든 것을 남김없이 빨아들이는 폭군이자 파괴자가 되기도 하다가 상대를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매력적인 존재로 비유되기도 하는 등 극과 극의 요소 모두 딱 들어맞는 키워드가 되어주고 있다. 가장 어렵고 난해한 우주 속 천체가 어쩌면 인간의 마음을 표현해주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흥미롭게 느껴진다. 인간 역시 우주만큼 어렵고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