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위협 – 우주방사선의 공격

 1910년대 물리학자 빅터 헤스는 기구를 직접 타고 5000m를 넘게 올라가 방사능 수치를 측정해냈다. 상당한 위험을 안고 진행한 실험이었는데 그 결과는 꽤나 흥미로웠다. 1km 위치까지는 방사선 수치가 꾸준히 감소했으나 5km대에 들어서는 수치가 지표면보다 아주 높게 측정된 것이다. 지표면에는 핵실험 같은 인위적인 요소가 아니더라도 자연적인 방사선이 방출된다. 그렇기때문에 지표면의 자연 방사선보다 훨씬 높은 상공의 방사선은 우주에서 무언가 날아온다는 것을 의미했다. 헤스는 이 발견으로 193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다.

헤스가 타고 방사선을 측정했던 기구. 가운데 있는 사람이 헤스이다.


 헤스가 발견한 우주방사선(cosmic rays. 우주선이라고도 부른다.)은 물리학, 천문학 분야에서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우주 저 먼곳에서 날아온 천체의 정보를 알려주기도 하고 핵물리학 분야에서 입자의 구성 요소를 분석하는 것에도 유용하게 쓰였다. 이처럼 우주방사선을 유용하게만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튼튼한 보호막 덕분이었다. 먼저 지구 자기장이 우주에서 날아오는 대부분의 방사선을 막아낸다. 뚫고 들어온 입자의 대부분은 대기가 다시 막아선다. 대기와의 충돌로 붕괴된 입자는 전자가 되어 우리에게 쏟아진다.

오로라의 모습. 지구자기장과 우주방사선이 대결하는 모습을 우리는 오로라를 통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아주 축복받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튼튼한 보호막에 의해 걱정없이 생명을 꽃피울 수 있었고 지금도 그 행운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문명이 지속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우주방사선이 우리를 다시 위협하고 있다는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 과연 어느 부분에서 우주방사선이 일상 속 위험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일까.

항공승무원 우주방사선 피폭

뉴욕과 홍콩을 이어주는 북극항로의 모습


 헤스의 실험으로 알 수 있듯 높은 고도에 올라가면 당연하게도 우주방사선에 노출되는 양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그 중에도 북극 주변을 날게 되는 북극항로의 경우 자기장이 약한 부분이기 때문에 더 많은 방사선 노출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주방사선이 위험하다고 북극항로를 포기할 수는 없다. 훨씬 거리가 짧아지고 연로도 적게 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미국을 향하는 비행기는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항공승무원들은 항시 우주방사선 피폭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이다. (원자력 발전소 근무자들보다 평균 피폭량이 배 이상 높게 측정되는 정도이다.)

지구 자기장의 이미지. 북극과 남극은 자기장이 수직 형태로 되어있어 다른 지역보다 방사능 노출이 심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21년 최초로 우주방사선 피폭에 의한 산재가 인정되었다. 해당 근로자는 6년 동안 승무원으로 근무하다가 급성백혈병이 발병하였고 5년의 투병 끝에 사망하고 만다. 안타깝게도 사망 1년 후에야 산재가 처리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항공승무원의 피폭에 대한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 결과 승무원의 피폭량 제한이 훨씬 강해졌으며 운항스케쥴 조정 등 안전 강화가 이어지게 되었다.

항공기 급강하 사고

 항공승무원의 피폭은 해당 직업이 아니라면 크게 와닿지 않는 일일 수 있다. 북극항로가 위험하다고 해도 여행이나 출장 등으로 일회성 비행을 할 경우에는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방사선은 비행기 자체에 큰 타격을 주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사고가 2008년 있었던 콴타스 항공 급강하 사고이다.

콴타스 항공의 해당 여객기 모습


 콴타스 항공의 에어버스 A330-303기는 싱가포르를 출발해 호주 퍼스를 향해 가고 있었다. 11000m 고도를 날고 있던 비행기는 비행을 시작한지 3시간이 좀 넘은 무렵 갑작스럽게 경보가 켜졌다. 과속과 실속 경보가 동시에 켜지더니 급강하를 시작한 것이다. 약 200m 가량을 빠르게 하강하면서 승무원과 승객이 천장에 충돌하는 등 피해를 입게 된다. 다행히 조종사들이 비행기 통제에 성공하면서 더 큰 참사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위험한 사고였다.

손상된 비행기 객실 천장 모습


 사고 후 원인 조사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이 등장했다. 그 중 하나로 뽑힌 것이 우주방사선이었다. 대기 중에 내려오던 우주방사선 입자가 전자장비를 때리면서 잘못된 신호가 입력되었다는 것이다. (조사팀은 해당 날짜에 우주방사선이 갑자기 많이 나오는 사건이 있었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물론 가능성의 영역이지 해당 내용을 재연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100% 우주방사선이 범인이라고 확정지을 순 없지만 상당한 가능성을 가진 주요 용의자로 볼 수 있다.

벨기에 투표 컴퓨터 오류 사건

 우주선이 기계 장치에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은 급강하 사건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컴퓨터는 0과 1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간단한 언어에서 숫자가 하나 달라지기만 해도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이처럼 비트 값 하나를 0에서 1 또는 1에서 0으로 바꿔버리는 것을 비트플립(bitflip)이라 부른다. (이 비트플립을 방사선 입자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 1970년대부터 알려져 있었다.) 방사선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항공기는 당연히 비트플립이 일어날 확률도 높다. 그런데 2003년 벨기에에서 이 비트플립 현상이 의심되는 황당한 사건이 저 높은 하늘도 아니고 지상에서 발생했다.

스하르베크의 시청 모습


 2003년 벨기에 연방선거에서는 전자투표가 도입되었다. 1991년부터 준비해 온 방식으로 야심차게 전체적인 도입을 했으나 시작부터 문제가 생겼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있는 스하르베크라는 지역의 개표 결과 총 투표자 수보다 결과표가 무려 4096표나 많게 나온 것이었다. 재검표 결과 특정 후보에게 그 4096표가 더 추가된 상태로 확인되었다. 이 사건이 투표 조작 사건이었을까?

 조사 결과 한 개 비트에 입력이 잘못되면서 일어난 일로 확인되었다. 4096이라는 숫자는 2의 제곱수 중 하나로 비트 플립 현상으로 추가된 표였던 것이다. 문제는 이 오류의 원인이 무엇이냐는 것인데 역시 우주방사선이 용의자 중 하나로 떠올랐다. 역시나 이 부분에서도 우주방사선은 재현 불가능이라는 영역에 숨어 확실한 범인으로 잡히지는 않았다.

IBM의 양자컴퓨터. 양자컴퓨터 또한 우주방사선에 의해 성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사실 지상에서 우주방사선으로 인해 전자장비가 오류를 일으킬 확률은 아주 적다. 그렇기 때문에 알려진 사례들 중 대부분이 의심받는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기와 자기장을 넘어 우주로 범위를 넓혀보면 우주방사선은 전자장비의 아주 치명적인 적이 된다는 것은 확실해진다. 실제로 우주선에는 같은 반도체 여러 개를 넣어 동시에 같은 값을 내야만 신뢰하는 방식을 쓰기도 하며 (여러 반도체가 동시에 비트플립을 일으킬 가능성은 훨씬 더 적다.) 아예 반도체 제작 과정에서 방사선에 저항성이 강한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반도체는 훨씬 더 작아지고 섬세해졌으며 성능도 더 뛰어나졌다. 다만 그 반대급부로 오류가 날 가능성 역시 높아지고 있다. 우리의 현재 일상처럼 미래에도 전자기기들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우주방사선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이 만들어져 안전한 지구를 넘어 더 먼 곳까지 인류의 활동 반경이 넓어질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참고자료

  1. 최성우. (2019). 지구의 강력 방어막 ‘지구자기장’. Science Times
  2. 안희복, 김규왕, 최연철. (2020). 항공승무원의 우주방사선 피폭 저감에 관한 연구. 한국항공운항학회
  3. 조문희. (2021). 우주방사선 피폭으로 첫 산재인정 승무원, 질병판정서 보니. 경향신문
  4. Katia Moskvitch. (2013). Space radiation: Should frequent flyers worry?. BBC
  5. (2014). AIR SAFETY – 우주방사선을 막아라. 이코노미스트
  6. Andrew Heasley and Ari Sharp. (2009). Cosmic rays link to Airbus falls. The Sydney Morning Herald
  7. Becky Ferreira. (2017). How Space Weather Can Influence Elections on Earth. VICE
  8. 박주영. (2016). “자동차 급발진 사고가 우주 입자 때문이라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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