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과학사: 만물의 근원은 어디에서 왔는가.

“예비 결과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본 약 125GeV의 5시그마(표준편차) 신호는 극적입니다. 이것은 실존하는 새로운 입자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보손임이 틀림없으며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무거운 보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의미는 아주 중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연구와 교차 검증에 열정적으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2012년 7월 4일. 제네바의 CERN 연구소에서 중요한 발표가 있었다. 그 내용은 어떠한 입자로 의심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99.999994%의 확률로 발견한 것 같다고 말한 이 입자의 이름은 ‘힉스입자’. 처음 제안된 이후 48년간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미지의 입자가 드디어 인류의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힉스입자는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 긴 시간 과학자들이 찾아내려 애썼던 것일까.

2012년 CERN 발표 당시 현장에 있었던 피터 힉스와 프랑수아 앙글레르의 모습. (사진: CERN)


 인류가 아주 오랜 시간 궁금해했던 질문이 있다. 과연 이 세상을 이루는 물질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각자 자신의 생각에 맞춰 이 세상을 이루는 물질을 떠올렸다. 밀레토스 학파의 창시자로 알려진 탈레스는 물이 세상의 근원이라 말했다. 그가 보기에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는 물이었다. 물은 끓이면 기체가 되며 얼리면 고체가 된다. 이런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그는 세상은 물로 이루어져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물론 그의 의견을 모든 사람들이 동의한 것은 당연하게도 아니었다.

탈레스의 초상화. 탈레스는 자연을 이해하는 것에 물질적인 원리를 구사한 시도를 보였다. 이러한 시도들 덕분에 탈레스는 서양 철학의 시초라 불린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 칭했으며 그 유명한 피타고라스는 수가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수의 조화와 질서가 그 원천이라고 본 것이다. 만물의 근원을 찾으려는 노력은 끝나지 않았다. 피타고라스의 제자였던 엠페도클레스는 세상이 물, 불, 흙, 공기 4가지로 이루어져있다는 다원자론을 주장했다. 그의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져 오랜 시간 서양 학자들의 인식에 남아있었다.

4원소설의 개념도.


 지금 보기에 황당해 보일 수도 있는 4원소설만 고대 그리스에서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 역시나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는 아주 특이한 이론을 주장했다. 세상 모든 것은 다양한 입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입자는 더는 쪼갤 수 없는 ‘아토모스’로 이루어져 있다고 봤다. 그는 상당히 현대적인 ‘원자론’을 주장한 것이다. 데모크리토스의 주장은 긴 시간을 건너 1800년대 영국의 존 돌턴이 원자론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려 재정립하면서 되살아났다. 데모크리토스가 언급한 ‘Atomos(아토모스)’를 따서 원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Atom’을 만든 것도 돌턴 본인이었다.

데모크리토스로 추정되는 흉상.


 돌턴 이후 더 작은 것, 더 기본적인 것을 찾으려는 노력은 끝없이 이어졌다. 분자라는 것이 확인되었고 그 안에 원소가 있었으며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로 인해 그 원소가 상당히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계속되는 발견의 시대였다. 새로운 원소가 주기율표의 빈 공간을 채워나갔다. 화학자들은 주기율표를 확보했으니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질에 대해 더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과연 과학이 끝이 났을까? 절대 그럴 일이 없다. 1897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수리물리학 교수였던 J.J.톰슨이 음극선 실험 중에 이상한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음극선관 안에서 톰슨이 발견한 것은 ‘전자’였다. 절대 분해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원자가 분해되었다. 더 깊은 미시 세계가 열린 순간이었다.

실험을 진행하는 톰슨의 사진. (사진: 케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


 톰슨의 전자 발견 이후 1911년에 러더퍼드가 원자핵을 발견하였으며 1932년에는 채드윅이 중성자를 발견했다. 1936년에는 우주선 실험 도중 뮤온이라는 입자를 발견하였고 1947년에는 파이온이 발견되었다. 입자가 계속해서 등장했다. 실험적으로 이처럼 많은 입자가 발견되고 있었다면 이론적으로도 많은 진전이 있었다. 1900년대 초반 태동한 양자역학이 큰 역할을 했다. 입자를 예견하고 발견하는 굉장히 ‘과학’적인 과정이 이어졌다. 이 과정 뒤에는 물질을 구성하는 요소를 설명하려는 학자들의 노력이 들어가 있었다.

 학자들은 이 우주를 구성하는 힘을 4가지로 보았다. 가장 오랫동안 연구했었던 중력, 맥스웰에 의해 통합된 전자기력, 방사성 붕괴에서 볼 수 있는 약한 핵력, 원자핵 속 입자를 결합시키는 강한 핵력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중 전자기력이 양자역학을 만나 양자 전기역학(quantum electrodynamics/QED)이라는 이론이 1950년대 만들어졌다. 이 이론에서 전자기장이 불연속적인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하는데 이 입자가 바로 광자였다. 이 질량도 없는 입자가 전자기력을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장의 영향을 받는 입자를 설명할 때는 게이지 대칭이라는 것이 있어야 했다. 이는 어떤 변화를 장에 주더라도 이론에 변화가 있으면 안 된다는 성질이다. 이 게이지 대칭은 모든 힘에서 똑같이 적용된다. 각 힘마다 게이지 대칭을 위해 존재하는 매개체가 생긴다. 전자기력에서는 앞서 설명한 광자(빛)이며 강한 핵력에서는 글루온이라 불리는 입자, 약한 핵력에서는 W보손, Z보손이 있다. 이들 각 입자는 예측과 발견이 모두 이뤄졌으며 해당 과학자들은 거의 다 노벨상을 수상했다.

양자전기역학을 정립한 공로로 동료들과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만의 사진. 그는 양자역학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입자에 대한 이론이 발전하고 있을 때, 문제가 생겼다. 게이지 대칭에 따르면 입자에는 질량이 없어야 했다. 광자는 그렇다. 문제는 다른 입자들이었다. 우리가 발견한 입자에는 질량이 있는데 수학적으로는 있어선 안 된다? 손발이 맞지 않은 상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64년, 35세의 젊은 학자였던 피터 힉스는 이 대칭성을 깨버리는 시도를 한다. 그는 자발적 대칭 깨짐이라는 개념을 이용했다. 완벽한 공이 원뿔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다면 그 모습 자체는 대칭이다. 하지만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으니 금방 공이 굴러떨어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칭은 깨진다. 힉스는 어떠한 메커니즘이 가장 안정적인 진공 상태에서 대칭을 깨버려 입자와 상호작용을 하여 질량을 부여한다고 설명했다. 훗날 이 메커니즘에서 등장하는 것에 본인의 이름이 붙어 힉스 장(Higgs field)라고 불렀으며 이 힉스 장의 결과로 존재할 수 있는 입자가 힉스 입자였다. (힉스 입자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의 이휘소 박사가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표준 모형. 보라색은 쿼크, 초록색은 렙톤이며 이 두 가지 입자를 페르미온이라 부른다. 페르미온은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이며 붉은색은 보손이라 불리는 힘 전달 매개입자이다. 그 옆에 힉스입자가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힉스 입자가 제안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물리학자들에 의해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인 표준 모형이 정립되었다. 이론적으로 예측되었던 표준 모형의 입자들이 하나 둘 확인되었다. 이를 위해 학자들은 입자가속기라는 것을 이용했다. 매우 빠른 속도로 입자를 충돌시켜 강력한 에너지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충돌로 인해 생겨난 강력한 에너지가 질량을 가진 입자로 변환되는 과정을 노린 것이다. 결국 큰 질량의 입자를 검출하려면 더 큰 에너지를 만들 충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더 큰 에너지를 위해서는 더 큰 입자 가속기가 있어야 했다. 기술의 발전은 더 거대한 입자 가속기를 만들 수 있게 하였고 그 결과 1995년, 웬만한 원자핵보다 무거운 톱쿼크를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여전히 힉스입자는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있을 것이라 예측하는 것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원인은 둘 중 하나이다. 있을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틀렸거나 아직 발견할 기술이 부족하거나. 후자가 맞는다면 학자들은 더 강력한 입자 가속기가 필요했다. 힉스입자는 다른 입자들과 발견 난이도 자체가 달랐다. 질량을 예측할 수 있었던 다른 입자들과 달리 힉스입자는 질량 예측도 힘들었다. 입자를 검출한다고 해도 다른 반응에서 보이는 모습과 구별하기 어려워 이것이 힉스입자인지 아닌지 판단도 쉽지 않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능 좋은 검출기로 오랜 기간 데이터를 쌓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확인해야 했다. 오죽하면 1988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던 세계적인 실험물리학자였던 리언 레더먼은 힉스입자를 설명하는 자신의 저서 제목을 ‘Goddamn particle (빌어먹을 입자)’라고 쓰려했다. 물론 이 시도는 출판사의 권유로 인해 ‘God particle (신의 입자)’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LHC를 항공사진에 표시한 모습. 아주 거대한 입자가속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CERN)


 힉스입자뿐 아니라 입자물리학 연구의 발전을 위해 거대 입자 가속기의 건설은 필연적이었다. 엄청난 자금이 들어가는 이 계획에 뛰어든 곳은 미국과 유럽이었다. 미국은 초전도 초충돌기(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 SSC)라는 이름의 입자가속기를 텍사스에 만들 계획이었다. 1991년 공사를 시작하고 땅에 터널을 파던 도중 1993년, 갑작스럽게 계획이 취소되었다. 예산을 우주정거장에 좀 더 집중하겠다는 이유가 있었지만 파던 터널을 다시 매립하는 것에도 엄청난 돈이 들어간 것을 생각하면 매우 아쉬운 일이었다. 반면에 유럽은 1995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27km 지름의 거대 입자가속기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계획은 계속 이어져 2008년, 대형 강입자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 LHC)가 첫 시운전을 시작했다. 입자물리학의 미래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입자가속기의 내부 모습. (사진: CERN)


 LHC는 기대대로 엄청난 성능을 보였다. 그 결과 2012년 7월 4일, 힉스입자로 보이는 것을 찾아냈다고 했으며 다음 해인 2013년 3월 14일. 공식적으로 힉스입자의 발견을 발표하였다. 2012년 7월 당시 CERN의 발표 현장에 있었던 피터 힉스는 눈물을 보이며 자신의 발견이 증명된 것에 감격하였으며 바로 201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같이 수상한 프랑수아 앙글레르 역시 개별적으로 힉스장 연구를 진행했던 인물이었다. 마찬가지로 같은 연구를 한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브라우트도 있었으나 그는 힉스입자가 발견되기 전에 사망하여 수상하지 못했다.)

힉스입자가 생성되는 충돌 시뮬레이션. (사진: CERN)


 힉스입자는 단순히 게이지 대칭의 모순을 해결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 기간 다져온 표준모형이 완성에 다가갔음을 의미했다. 오랜 시간 인류가 품어온 ‘우주 만물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나?’라는 질문의 답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빅뱅이 일어난 이후 온갖 입자가 섞여있던 수프와도 같던 우주가 전체적으로 퍼져있던 힉스장의 영향으로 질량을 얻게 되고 구별할 수 없던 우주의 네 가지 힘이 분리되었다. 우리가 아는 우주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결국 힉스입자의 발견은 이 우주의 시작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에도 아주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피터 힉스의 사진. 그는 2024년 4월. 세상을 떠났다.


 물론 당연하게도 표준 모형은 아직 이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네 가지 힘 중 아직 중력은 그 매개입자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입자에는 이미 중력자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또한 힉스입자에 의해 질량이 주어지는 것은 알았어도 왜 그 질량이 특정한 값을 가져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아직 질량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실험 결과에서도 문제가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중성미자의 질량이 문제였다. 표준모형에서는 중성미자의 질량을 0이라 예측하고 있으나 실제 측정에서는 질량이 아주 작지만 존재한다. 이런 여러 이유들이 섞여 힉스입자가 발견되었음에도 그리고 많은 측정으로 표준모형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가고 있음에도 100%라는 결과를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

 힉스입자의 발견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이는데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언제나 과학이 그래왔던 것처럼 다음 챕터는 더 거대한 질문을 던지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실제로 힉스입자 연구 당시 절대로 이 입자가 발견될 수 없다고 말한 과학자도 있었다. 그 인물이 바로 스티븐 호킹이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던(심지어 동료 과학자와 내기도 했다.) 이유는 단지 발견되지 않으면 더 흥미로울 것 같아서였다. 만약 힉스입자가 발견되지 않으면 표준모형에 문제가 크게 생긴 것이니 새로운 이론을 생각해야 할 테니 이것이 참 재미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처럼 과학자들은, 과학 역사는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로 만물을 이해하려 하고 있다. 과연 표준모형의 끝은 어디일 것인가. 그동안 있어왔던 수많은 이론들처럼 휴지통에 던져질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궁극의 이론으로 진화하여 만물에 대한 우리의 질문에 정확한 답을 던져줄 수 있을지.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답을 찾기 위해 입자 가속기는 돌아가고 있고 과학자들의 머리도 쉼 없이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1. 리언 레더먼, 딕 테레시 (박병철 역). 2017. 신의 입자. 휴머니스트
  2. 리언 레더먼, 크리스토퍼 힐 (곽영직 역). 2018. 힉스 입자 그리고 그 너머. 지브레인
  3. 이종필. 2015. 신의 입자를 찾아서. 마티
  4. 한정훈. 2019. 양자물질의 역사 [1]: 최초의 물질 이론. HORIZON
  5. 이창욱. 2022. [프리미엄리포트] 10년간 힉스 입자 1000만개의 외침 “표준모형이 옳다”. 동아사이언스
  6. 이근영. 2013. ‘신의 입자’ 예견 힉스·앙글레르에 노벨물리학상. 한겨레
  7. 카를로스 세라노. ‘힉스 입자’는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어떻게 바꿨나. BBC코리아
  8. 이종필. 2024.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나?…‘대칭’을 깨트려 ‘질량’을 얻다. 경향신문
  9. 박정한. 2025. [초점] 힉스 입자, 표준모형 너머 ‘새 물리학’ 문 열까?. 글로벌이코노믹
  10. 이강영. 2012. ‘힉스’의 발견, 물리학의 역사를 새로 쓰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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