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과학사: 한 장의 종이에 담긴 삶과 죽음

 1913년 12월 29일. 한 해의 끝이 코앞으로 다가온 이때, 미국 조지아주의 애틀란타에서는 미국 천문학회와 미국과학진흥협회의 합동 회의가 개최되었다. 다만 천문학회 자체로만 보면 이전 회의에서 30~40명 정도가 참석한 것을 생각하면 10명가량의 적은 인원이 참석한 소규모 회의가 되었는데 두 번째 날인 12월 30일, 프린스턴 대학교의 천문학과 교수였던 헨리 노리스 러셀이 발표자로 나섰다. 그리고 그가 발표한 내용은 훗날 천문학에서 거대한 족적을 남기게 된다. 흔히 H-R도라고 부르는 현대 천문학에서 사용하는 가장 유명한 도표가 세상에 제대로 공개된 순간이었다.

1913년에 열린 미국 천문학회 참석자 사진. 정 가운데 있는 사람이 하버드 천문대 대장 에드워드 피커링. 그 오른쪽에 있는 인물이 헨리 노리스 러셀이다. (사진: 미국천문학회)


 헨리 노리스 러셀은 엄격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소년이었다. 그의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수학 실력이 아주 뛰어난 인물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수학 능력으로 학창 시절 상을 받을 정도의 수준을 갖추고 있었다. 12세까지 학교에 가지 않고 부모님에게 교육을 받던 러셀은 그 능력을 물려받았는지 수학적 능력이 굉장히 뛰어난 사람으로 자라났다. 그 결과 만 16살의 나이에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생 러셀에게 대학 생활의 일탈은 전혀 다른 세상 소리였다. 그야말로 공부에 몰입한 그는 프린스턴대학에서 전무후무한 ‘insigni cum laude(인시니 쿰 라우데)’라는 칭호를 받으며 19세의 나이에 학부를 최우수 졸업했다. 당시 미국의 유명 천문학자였던 찰스 어거스터스 영 아래에서 계속 학업을 이어나가던 그는 천문학의 광범위한 부분에 관심을 보였다. 행성, 소행성, 변광성, 식쌍성 등 여러 방면으로 연구를 진행하던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넘어가 별의 시차 측정 방법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야말로 천문학 분야의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었다.

러셀의 사진


 프린스턴을 떠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를 이어나가던 러셀의 당시 주 관심사는 별의 시차였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는 카네기 재단의 지원으로 별의 시차를 측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러셀은 이곳의 연구 조교로 들어가 해당 연구를 진행, 실제 논문도 작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다만 작업을 이어가던 그는 질병으로 인해 케임브리지에서의 연구를 더 이어나가지 못하고 1905년 모교인 프린스턴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건강을 회복한 이후에도 별의 시차를 연구하는 것이 그의 주요 목표 중 하나였다.

 당시 천문학자들에게 별의 시차는 상당히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 마침 사진 기술이 발전하면서 눈금자를 이용하여 어렵게 측정하던 방식을 벗어나 조금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다. 이 시차를 활용하면 별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고 거리를 알면 별의 밝기를 포함한 다른 물리량을 알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결국 러셀과 당시 천문학자들에게 시차를 안다는 것은 별의 비밀을 푸는 출발점에 선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그렇게 러셀은 자신의 연구실에서 별의 물리량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었다.

프린스턴대학교의 할스테드 천문대. 해당 천문대는 1932년에 철거되었다. 러셀은 1905년 돌아온 이후 평생을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보냈다. (사진: 프린스턴 대학교)


 미국에서 러셀이 열심히 연구를 하고 있을 때, 바다 건너 유럽 대륙에서도 별의 물리량을 측정하려는 천문학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중에서 러셀과 상당히 비슷한 연구를 진행하던 사람이 있었다. 덴마크 출신의 화학자였던 아이나르 헤르츠스프룽이었다. 러셀과 달리 전문적인 천문학의 길을 걷지 않았던 헤르츠스프룽은 상당히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 천문학을 전공한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아 천문학적 흥미를 가진 채로 자라던 그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 때문에 천문학의 길로 들어서지 못했다. 아버지 역시 전공인 천문학을 살리지 않고 진로를 바꿔 금융 기업의 간부로 재직하였다. 이 경험을 토대로 헤르츠스프룽의 아버지는 천문학자를 직업으로 삼는 것은 불안정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화학 분야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 그는 여러 화학의 분야 중 사진과 관련된 기술에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빛을 이용하는 화학. 광화학에 길로 들어선 것이다.

아이나르 헤르츠스프룽의 사진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등 유럽 여러 곳을 다니면서 화학자로 근무하고 공부하던 헤르츠스프룽은 고향으로 돌아와 집안의 유산을 상속받아 경제적인 걱정을 잠시 덜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그동안 접어두었던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다시 꺼내들 수 있었다. 헤르츠스프룽은 본인의 전공이었던 사진술과 천문학을 접목시켰다. 결국 그냥 사진이 아닌 ‘별 사진’을 분석하게 된 것이다. 그는 사진을 통해 별의 스펙트럼을 분석하면서 당시 하버드 천문대에서 이어지던 별 분류에 관해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는 하버드의 여성 천문학자인 안토니아 모리의 스펙트럼 분류 방법을 지지하면서 당시 천문대장이던 피커링을 설득하려 하기도 했다.)

 이렇게 하버드에서 나온 별 분류표를 자세히 살펴보던 헤르츠스프룽은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비슷한 형태의 스펙트럼이라면 성분도 비슷하다는 뜻일 테니 별의 실제 밝기 역시 비슷할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그가 살펴본 분류표에서는 같은 분광형인데 어떤 별은 엄청 밝고 어떤 별은 엄청 어둡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05년 독일의 사진 잡지에 해당 내용을 정리하여 같은 분광형 안에 완전히 다른 두 집단이 있다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이는 사실상 붉은 별 안에 적색거성과 왜성이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한 것이었다.

슈바르츠실트와 헤르츠스프룽이 연구했던 포츠담 천문대의 건물. 현재는 관측소로 사용하지 않으며 포츠담 기후 영향 연구소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 포츠담 기후 영향 연구소)


 헤르츠스프룽의 연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의 연구를 흥미롭게 생각한 독일의 천문학자 카를 슈바르츠실트의 도움을 받아 괴팅겐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그곳에서 별의 밝기와 색을 표로 그려보는 작업을 진행했다. 여러 별 중에서 플레이아데스 성단과 히아데스 성단의 별들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았는데 그 이유는 이 성단이 지구에서 관측하기 쉽고 각 성단에 위치한 별까지의 거리는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서로 비슷한 거리에 있다면 밝기 차이를 거리에 따라서 다르게 분석할 필요가 없었다. 헤르프스프룽이 별의 색깔과 밝기에 관한 관계를 파악하기에 딱 좋은 표본이었다. 그 결과 1911년, 해당 내용이 담긴 논문을 당시에 일하고 있던 포츠담 천문대(자신을 독일로 데려왔던 슈바르츠실트가 포츠담으로 자리를 옮기자 헤르츠스프룽도 같이 이동했다.) 보고서에 담았다. 처음으로 별의 색과 밝기를 이용한 표가 세상에 나타난 순간이었다.

헤르츠스프룽의 논문에 그려진 그래프의 모습. 가로축이 밝기, 세로축이 별의 최대 파장이다. 축 방향이 다르게 그려져서 우리가 흔히 본 그래프와 모양이 좀 다르게 보인다.


 문제는 발표된 저널이 포츠담 천문대의 보고서 형태여서 접근성이 상당히 떨어졌다. 바다 건너 같은 연구를 진행하던 러셀에게 헤르츠스프룽의 연구가 전달되는 것이 불가능했던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러셀은 자신만의 길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시차를 통해 별의 물리량을 확인하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간 목표를 겨냥하고 있었다. 바로 별의 진화에 대해 알아내려 했던 것이다. 당시 천문학은 관측이라는 경계를 넘어서 다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었다. 바로 천체물리학이었다. 별의 내부 구성, 진화 등의 범위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관측적인 지식으로 해낼 수 없었다. 헤르츠스프룽이 화학적인 지식을 통해 이 분야로 들어온 것처럼 러셀 역시 이 문제를 물리학적으로 바라봤다.

 헤르츠스프룽과 달리 러셀에게는 다른 강점이 있었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천체물리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미국의 방대한 관측 자료에 접근하기가 훨씬 쉬웠다. 뛰어난 이론가였던 러셀은 하버드 천문대의 피커링과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면서 여러 관측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윌슨산 천문대의 관측자들에게도 자료를 받아 그야말로 당시 얻을 수 있는 최상, 최대의 자료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었다. 마침 시차와 스펙트럼을 측정하는 기술도 상승하면서 데이터의 질도 좋아졌다. 이런 여러 이점 속에서 러셀은 헤르츠스프룽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별의 스펙트럼과 밝기 사이에는 어떠한 관계가 있었다. 그의 그래프에는 대각선으로 나타난 특정 모양이 보였다. 그리고 이 사실은 1913년 12월 발표된 이후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러셀의 논문에 있는 그래프의 모습. 대각선으로 별이 많이 분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연하게도 러셀은 이후 자신과 같은 접근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한 학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헤르츠스프룽도 러셀도 해당 사실을 알고 오히려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헤르츠스프룽이 먼저 실마리를 찾아내고 그래프를 만들어냈지만 러셀의 공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인력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학회나 공적인 장소에 나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길 꺼리지 않았고 대중 강연에도 적극적이었던 만큼 이론을 알리는 것에서 훨씬 유리했다. 추가로 그는 단순히 그래프를 그려서 ‘이런 식으로 별을 분류 해석할 수 있다.’라는 단계로 끝내지 않았다. 본인이 원하던 대로 이 그래프를 별의 생애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진화시켰다. 그래프 내에서 가장 많은 별이 머무는 공간을 별의 일생에서 가장 많은 삶을 보내는 주계열성(main sequence), 오른쪽 위에 붉은빛을 내지만 아주 밝은 별은 크기가 커진 적색거성. 반대로 같은 붉은빛이지만 밝기가 어두운 별은 왜성으로 분류했다. (이 용어는 헤르츠스프룽이 쓴 것을 러셀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물론 진화의 방식은 거성에서 왜성으로 이루어진다고 지금 지식과는 다르게 해석했지만 별의 일생을 그래프 속에서 만들어냈다는 점은 굉장한 성과였다.

 이 그래프는 만들어진 이후 그야말로 천문학의 새로운 장을 여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망원경은 인류가 별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만들어줬다. 하지만 별 하나하나를 연구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 많은 별에 어떠한 비밀이 숨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더 넓은 시야가 필요했다. 두 사람이 만든 그래프는 커다란 시각으로 별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별이 규칙적으로 그래프에 나타난 순간 우주의 질서에 다가서는 확실한 증거를 찾은 것이다! 별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생로병사를 알아낼 수 있었고 별의 무리. 성단의 그래프를 분석하면서 그 성단의 역사, 더 나아가 은하의 역사까지 확인이 가능해졌다. 단 한 장의 종이 안에 우주의 역사서가 담기는 순간이었다.

일반적인 H-R도의 모습. 가운데 긴 대각선이 주계열성. 오른쪽 위에 나온 가지가 적색 거성. 왼쪽 아래에 있는 약간의 별은 백색왜성을 보여준다.


 해당 그래프는 시간이 흘러 새로운 이름이 붙었다. 1933년 덴마크의 천문학자 스트룀그렌이 본인의 논문 속에서 헤르츠스프룽-러셀 도표(Hertzsprung–Russell diagram)라고 소개한 것이다. 이 이름은 그 이후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현재 H-R도(H–R diagram)라는 약자로 불리게 되었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서로 다른 배경을 가졌지만 두 사람은 정확하게 같은 방향을 바라봤다. 해당 발견 이후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천문학 연구를 이어간 두 사람은 그야말로 학계의 거장이 되었다. 헤르츠스프룽은 1967년,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20세기 최고의 관측천문학자이며 그 유명한 티코 브라헤에 비견될만하다는 추도사를 받았다. 러셀은 1957년. 79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천체물리학자이자 거목으로 칭송받았다. 그들 역시 평생을 연구한 별이 되어 인류 천문학사 그래프의 가장 밝은 지점에 자신의 위치를 표시하였다.

참고문헌

  1. 이광식. 2018. 천문학 콘서트. 더숲
  2. 리처드 베렌젠 외 (이명균 역). 2017. 은하의 발견. 전파과학사
  3. 닐 디그래스 타이슨 (이강환 역). 2019. 웰컴 투 더 유니버스. 바다출판사
  4. Harrison Blackman. 2025. A Stellar Student, He Transformed Our Understanding of the Stars. Princeton alumni weekly
  5. Hrovat, Mary. 2023. Russell Announces His Theory of Stellar Evolution. EB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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