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과학사: 우주의 엑셀을 밟아라

 1998년 9월, 미국 천문학회 학술지에 ‘Observational Evidence from Supernovae for an Accelerating Universe and a Cosmological Constant’라는 이름의 논문이 한편 올라왔다. ‘초신성 관측을 통한 가속 팽창 우주와 우주상수 연구’라는 거창한 이름의 이 논문에 나온 내용은 3명의 과학자들에게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의 영예를 가져다주었다. 초신성? 가속 팽창? 우주상수? 쉽게 연결하기 어려운 세 키워드는 천문학자들에게 우주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다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1998년 9월 논문의 표지. 2024년 과천과학관에서 열린 ‘보이지 않는 우주 기획전’에 전시되어 있었다.


 20세기, 빅뱅 우주론이 태동하였고 우주배경복사가 발견되면서 그 증거까지 확인하였다. 이제 빅뱅으로 우주가 시작되었음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하는 사실이 되었다. 학자들의 다음 목표는 빅뱅과 우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었다. 우주가 커지고 있다면 과연 얼마나 빠르게 커지고 있는 것일까. 이 속도를 알 수 있다면 정확하게 시간을 거꾸로 돌려 우주의 나이를 제대로 측정할 수 있고 과거의 우주가 어떠했는지, 미래의 우주 역시 어떤 결말을 보여줄 것인지 역시 추측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뭘 이용해야 그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까.

 천문학에서 과거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더 멀리 있는 천체를 바라보면 된다. 광활한 우주에서 더 멀리 있는 천체에서 온 빛은 그 거리만큼 긴 시간을 날아왔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먼 거리의 천체는 먼 과거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멀리서 날아온 빛은 당연하게도 그 밝기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멀리 있으면서도 밝게 볼 수 있는 천체를 찾아야 했다. 그에 걸맞은 천체는 바로 ‘초신성’이었다.

허블 망원경이 촬영한 게성운의 모습. 1054년에 폭발한 초신성의 잔해이다. (사진: NASA)


 별이 어떠한 이유로 인해 커다란 폭발을 일으키는 것이 초신성이다. 이 초신성의 밝기라면 먼 거리에서도 관측이 가능할 것이었다. 이러한 초신성 관측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곳은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위치한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Lawrence Berkeley Laboratory)였다. 미국의 맨하탄 프로젝트의 핵심 인물이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어니스트 로렌스가 설립한 이 연구소는 원래 입자물리학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입자물리학에서의 위상이 조금씩 낮아졌고 (더 좋은 실험 장치를 건설한 페르미 연구소 등으로 중심이 이동했다.) 천체물리학 분야에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고 있었다. 연구소에 찾고자 했던 것은 공룡 멸종을 불러일으킨 소행성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태양의 동반성 ‘네메시스’였다. 빛을 거의 내지 않아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라 추측한 갈색왜성 네메시스가 지구 쪽으로 소행성을 주기적으로 던진다는 이론이었는데 이를 찾기 위해서는 넓은 범위의 하늘을 주기적으로 관측해야 했다. 아무래도 태양의 동반성이면 가까이 있을 테니 변화가 매우 큰 천체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네메시스’는 없었다. 그런데 이때 자료를 분석하기 위해 개발한 프로그램은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우주의 은하 속에서 갑자기 밝게 빛나는 초신성을 분석하기에 적합했던 것이다. 언제 어디서 폭발할지 모르는 초신성인 만큼 넓은 범위를 주기적으로 관측하는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변화하던 연구소에 1980년대부터 젊은 물리학자 한 명이 합류하게 되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던 솔 펄무터가 그 주인공이었다.

솔 펄무터의 사진 (사진: 버클리 연구소)


 펄무터가 연구소에 들어간 시기, 초신성 관측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확인 가능한 초신성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CCD를 이용하여 훨씬 어두운 천체를 컴퓨터를 통해 분석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CCD를 개발한 두 과학자는 이 공로로 200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초신성의 종류 역시 조금 더 자세히 분류하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별이 수명을 다해 폭발하며 생긴 초신성을 제외하고 백색왜성에서 일어나는 초신성을 구별한 것이다. 1a형이라 불리는 이 초신성은 특히나 중요했다. 거리를 측정하는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1a 초신성의 상상도. 동반성의 물질을 끌어당기는 백색왜성의 모습이다. (그림: NASA)


 ‘멀리 있는 것을 본다.’라는 것 하나로는 천문학에서 만족스러운 연구를 진행할 수 없다. 초신성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어야 하는데 그중 아주 중요한 것이 ‘거리’였다. 만약 초신성 기존 밝기가 일정하다면 가까이에서 터졌을 경우는 밝아 보이고 멀리서 터졌을 경우에는 어두워 보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별이 죽어 생성되는 초신성은 별 자체 물질의 양에 따라 밝기가 달랐다. 하지만 1a형 초신성은 메커니즘이 달랐다. 백색왜성이 자기 주변에 돌고 있는 별의 물질을 받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붕괴하면서 터지는 것이 1a형 초신성이었다. 백색왜성이 물질을 견디지 못하고 터지는 한계 질량은 이미 계산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이를 찬드라세카 한계라 부른다.) 그렇다는 것은 폭발할 때 질량이 일정하다는 소리가 된다. 이 초신성은 우주의 거리를 알아낼 수 있는 표준 촛불이 될 자격이 있어 보였다. 이렇게 멀리 있는 은하 속에서 초신성을 찾게 된다면 거리를 측정할 수 있고 그 거리를 통해 우주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팽창했는지 알 수 있는 것이었다. 펄무터는 동료들과 함께 ‘초신성 우주론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연구를 시작했다.

 펄무터가 연구를 진행하고 있을 때, 새로운 초신성 관측팀이 하버드 대학교의 로버트 커시너 교수에 의해 결성되고 있었다. 당시 초신성 연구의 권위자였던 그는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초신성 연구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초신성 우주론 프로젝트’ 팀의 연구가 아직 제대로 진척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을 파악했던 그는 자신의 밑에서 막 박사 학위를 취득한 브라이언 슈미트와 함께 초신성 연구팀을 꾸렸다. ‘높은 적색편이 초신성 탐색팀’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연구는 슈미트의 활약으로 관측에 사용할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고 1995년 2월, 본격적으로 탐색을 시작했다.

브라이언 슈미트와 로버트 커시너 교수의 젊은 시절 사진.


 두 연구팀 중 먼저 연구 결과를 발표한 쪽은 초신성 우주론 프로젝트팀이었다. 1997년, 발표한 이 논문에는 그들이 초창기에 발견한 7개의 초신성에 대한 자료가 담겨 있었다. 그들의 분석 결과는 팽창 속도가 점점 감소하는 우주였다. 아직 너무 적은 데이터로 분석한 것이기에 확실한 결과라고 말하기엔 일렀다. 이 시기 높은 적색편이 초신성 탐색팀 역시 2년 정도의 시간 동안 뚜렷한 결과를 얻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특히 초신성의 빛을 분석할 때 우주에 퍼져있는 먼지들이 문제였다. 이 먼지 때문에 빛이 어두워지는 것을 성간 소광이라 부른다. 초신성의 빛에서 이 성간 소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사람은 커시너의 제자였던 대학원생 애덤 리스였다.

애덤 리스의 2011년 모습. 노벨상 수상 당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다.


 물리 전공자였던 탓인지 대학원에 가서야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리스는 더 빠르게 초신성의 매력에 빠졌다. 그는 성간 소광을 감안한 초신성 분석 방법을 만들어냈고 그 방법을 쓴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다. 리스는 자신이 만든 방법을 이용하여 연구팀이 최초로 발견한 원거리 초신성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가 조금 이상했다. 우주가 가속팽창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직 한 개의 초신성뿐이니 오차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997년, 허블 망원경이 관측한 자료를 포함하여 16개의 초신성으로 같은 분석을 했을 때 역시 이상한 결과가 나왔다. 우주가 더 빠르게 커지고 있었다. 애덤 리스는 이 결과를 동료들에게 알린 뒤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연구팀은 깊은 고민을 시작했다. 과연 이 결과를 발표해도 괜찮은 걸까? 나중에 오류라고 판명되어 주장을 철회해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신혼여행에서도 이 일을 고민하던) 리스를 포함한 연구팀은 결정을 했다. 마침 초신성 우주론 프로젝트팀 역시 초신성들이 예상치와 좀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점을 확인한 상태였다. 더 늦어질 수 없었다. 그렇게 2월 18일. 각기 다른 연구를 하던 두 연구팀은 자신들의 결과를 발표하게 되었다.

1a 초신성을 분석한 그래프. 아래 그래프는 위쪽 그래프에서 우측 상단부분을 자세히 그려놓은 것이다. 초신성의 분포가 ΩΛ=0.7인 그래프에 가깝다. 이 ΩΛ는 우주상수(암흑에너지)가 우주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우주가 가속팽창을 한다는 것은 무언가가 우주를 밀어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팀들은 오랜 과거 아인슈타인이 주장했다가 철회했던 ‘우주상수’를 다시 꺼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으로 인해 우주가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주상수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하지만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자신의 실수였다면서 우주상수 개념을 철회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렇게 죽은 이론이었던 우주상수가 두 연구팀에 의해서 부활한 것이었다. 2월 발표날 초신성 우주론 프로젝트팀은 자신들의 관측 결과를 소개하면서 우주상수의 필요성이 보이지만 아직 성간 소광으로 인한 오차들이 해결이 안 되어 결론을 확실히 내리지는 않았다. 뒤이어 발표한 높은 적색편이 초신성 관측팀은 확실하게 우주의 가속팽창이라는 결론을 주장했다. 이 내용을 정리한 논문이 바로 1998년 9월 출판된 것이었다. 물론 솔 펄무터의 연구팀 역시 이듬해인 1999년 6월에 자신들의 연구 결과가 우주가속팽창이라는 사실을 출판하는데 성공했다.

우주가속팽창을 1998년 최고의 발견으로 뽑은 사이언스지의 표지.


 두 연구팀이 독자적으로 연구한 결과는 이전 과학자들이 생각하던 개념과 정반대였다. 우주가 빅뱅으로 커진 이후 점점 속도가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으나 반대로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들이 재도입한 우주상수는 ‘암흑에너지’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였다. 이 우주의 엑셀을 밟고 있는 범인으로 지목된 암흑에너지는 아직까지도 그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학자들에게 새로운 연구 주제 덩어리를 던져준 엄청난 결과였던 것이다. 당장 1998년 사이언스지 선정 최고의 발견으로 뽑힌 이 연구들은 솔 펄무터, 브라이언 슈미트, 애덤 리스에게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이라는 선물도 건네주었다.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 누가 먼저 결과를 알아냈는지 또 발표했는지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주배경복사 연구를 먼저 시작했지만, 전혀 다른 일을 하던 펜지아스, 윌슨에게 선수를 빼앗긴 로버트 디키의 경우가 있었으며 (실제로 펜지아스, 윌슨은 노벨상까지 수상한다.) 미적분학 발명을 두고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경쟁했던 이야기는 상당히 유명하다. 그러나 이번 초신성 연구팀의 경우는 두 팀이 오히려 상호보완적 존재가 되었다. 같은 연구를 통해 나온 같은 결론이 독립적으로 진행되었다면 그 결론에 대한 신뢰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결국 몇 개월의 연구 발표 차이는 큰 문제 없이 두 팀을 모두 해피엔딩으로 이끌었다.

노벨상을 수상한 펄무터, 리스, 슈미트.


 기껏해야 100년을 살기 힘든 인간이 우주의 거대한 시간을 이해하려 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주가 탄생하고 커지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고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 것인가. 이 해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과학자들이 도전했고 그만큼의 성과가 나타났다. 우주가 더 빨리 팽창한다는 결과는 암흑에너지라는 다음 목표를 정해줬고 지금도 여러 우주망원경이 그 흔적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과연 엑셀을 밟고 있는 이 우주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 엑셀을 밟고 있는 정체불명의 힘은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긴 할 것인지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연구들이 서로를 보완하고 공격하면서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1. 이강환. 2014. 우주의 끝을 찾아서. 현암사
  2. 이석영. 2017. 모든 사람들을 위한 빅뱅 우주론 강의. 사이언스북스
  3. 안중호. 2021. 과학 오디세이 유니버스. MID
  4. 지웅배. 2020. [사이언스] 우주 ‘가속팽창’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들. 비즈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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