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의 계절. 천문학과 노벨상 이야기 2편

2002년 레이몬드 데이비스 주니어, 고시바 마사토시, 리카르도 지아코니

200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리카르도 지아코니, 고시바 마사토시, 레이몬드 데이비스 주니어. 당시 레이몬드 데이비스는 88세로 노벨 물리학상 최고령 수상자 기록이었다. (현재는 2018년 아서 애슈킨이 96세로 경신했다.) (사진: 노벨재단)


 레이몬드 데이비스는 젊은 시절부터 중성미자 연구에 매진한 학자였다. 비록 프레데릭 라이너스에게 선수를 빼앗겨 최초의 중성미자 발견자 타이틀을 얻지는 못했지만 해당 연구를 계속 이어갔다. 그는 태양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를 검출하기 위해 1.5km 금광 지하에 탐지 장치를 만들어 측정을 진행했다. 수십 년간 확인한 결과 측정값과 이론값의 차이가 현저했다. 이는 태양 중성미자 문제라는 이름으로 학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고시바 마사토시는 1983년, 일본의 기후현 가미오카 광산에 ‘카미오칸데’라는 이름의 중성미자 검출기를 건설하고 중성미자 측정을 진행했다. 데이비스의 결과를 재확인했으며 초신성에서 날아온 중성미자 검출에도 성공했다. 그는 중성미자가 우주를 비행하던 중 다른 유형의 중성미자로 변한다는 중성미자 진동 이론의 실마리를 찾기도 했다.

 리카르도 지아코니의 경우 X선 천문학의 선구자로 로켓에 X선 검출기를 달아 발사하여 우주에서 측정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반복된 이 검출 노력 끝에 전갈자리 X-1, 게성운 초신성 잔해 등 여러 X선 천체를 발견하는데 초석을 다졌다. 이후 지구 대기를 뚫고 우주 상에서 X선 천체를 찾는 X선 망원경 위성을 제안하고 그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결국 이 노력은 1999년 찬드라 X선 망원경이 발사되면서 결실을 맺었다.

2006년 존 매더, 조지 스무트

노벨상 수상 후 12월에 강연을 진행한 조지 스무트(왼쪽)와 존 매더(오른쪽) (사진: 노벨 재단)


 펜지아스와 윌슨이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한 이후 이 신호에 대한 연구가 계속 이어졌다. 우주 최초의 빛이라 할 수 있는 우주배경복사에는 그야말로 우주의 과거에 대한 비밀이 숨어있기 때문이었다. 존 매더와 조지 스무트는 이 우주배경복사를 더욱 자세히 연구하기 위해 이를 정밀 관측하기 위한 인공위성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우주배경탐사선(COBE: Cosmic Background Explorer)라고 이름 붙은 이 인공위성은 기존에 관측보다 압도적인 성능으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아냈다. 특히 우주배경복사가 모든 방향에서 완전히 같이 않고 아주 작은 차이를 보인다는 비등방성을 발견하였다. 이 약간의 차이가 우주 구조를 만들고 물질을 만드는 씨앗이 되었다는 이론을 증명한 것이었다. 이 연구팀을 이끈 두 사람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중 스무트의 경우 이화여대에서 초기 우주 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신기하게도 국내 기업의 공기청정기 모델을 하기도 했다.

2011년 솔 펄머터, 브라이언 슈미트, 애덤 리스

좌측부터 브라이언 슈미트, 솔 펄머터, 애덤 리스. 세사람은 노벨상에 이어 2015년 브레이크스루 상도 같이 수상했다. 해당 사진은 브레이크스루 상을 받을 당시의 모습.


 우주에서 그 모습을 확실하게 확인하려면 강한 빛이 있어야 한다. 먼 곳에 있을수록 그 빛이 더 강렬해야 우리가 찾아내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초신성은 먼 거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천체라 볼 수 있다. 솔 펄머터의 연구팀과 슈미트, 리스의 연구팀은 각기 다른 출발점에서 초신성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두 팀의 연구 결과는 같은 내용을 보이고 있었다. 먼 거리의 초신성들을 분석한 결과 우주가 점점 더 빠르게 커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주가 가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떠한 힘이 우주를 밀어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를 위해 아인슈타인이 철회했던 우주상수가 다시 부활하여 ‘암흑에너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서로 다른 두 연구팀의 결과가 같아 교차 검증이 된 이 내용은 2011년 노벨 물리학상으로 보답받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우리나라 연세대학교 이영욱 교수 연구팀이 초신성을 분석하여 우주가 가속팽창이 아닌 감속 단계에 들어갔다는 결과를 발표했다는 것이다. 이 연구가 맞는다면 2011년 노벨상 연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니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도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2015년 가지타 다카아키, 아서 브루스 맥도널드

노벨상을 수상하는 가지타 다카아키(왼쪽)와 아서 브루스 맥도널드(오른쪽). (사진: 노벨 재단)


 2002년 노벨상을 받은 데이비스와 마사토시는 중성미자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지만 태양 중성미자 문제는 아직 남아있었다. 가지타 다카아키는 마사토시의 제자로 스승이 만들었던 카미오칸데보다 더 거대한 슈퍼 카미오칸데라는 실험 장치를 건설해냈다. 이 실험 장치에서 중성미자가 다른 유형으로 변하는 중성미자 진동을 직접 확인하는데 성공했다. 다만 이 실험은 태양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로 확인한 결과가 아니었다. 태양 중성미자에서 일어나는 중성미자 진동은 맥도널드가 이끈 서드베리 중성미자관측소에서 확인되었다. 중성미자를 둘러싸고 있던 긴 미스테리가 드디어 풀린 것이다. 두 사람은 이 중성미자 진동에 관한 연구에 대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2017년 라이너 바이스, 킵 손, 배리 배리시

노벨상을 수상하는 라이너 바이스, 배리 배리시, 킵손. (사진: 노벨 재단)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시공간의 파동인 중력파를 찾기 위한 노력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당장 1993년 수상자인 테일러와 헐스 역시 중력파 연구와 관련된 내용이 수상 이유에 포함되어 있었다. 자 그럼 이제 제대로 중력파를 검출하기만 하면 된다. 이를 위해 전 세계 여러 과학자들이 힘을 모아 LIGO(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연구소)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이 MIT의 라이너 바이스 교수와 칼텍의 킵 손, 로널드 드레버 교수였다. 세 사람이 제안한 LIGO(라이고 프로젝트)는 긴 시간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2015년 9월. 드디어 첫 중력파 신호를 탐지해냈다. 이 내용은 2016년 2월에 발표되었고 바로 이듬해인 2017년 노벨상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다만 개국공신이나 다름없던 로널드 드레버 교수는 2017년 3월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수상하지 못하였고 연구팀의 연구책임자였던 배리 배리시 교수가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1000여 명이 넘는 연구진이 참여한 대형 과학 프로젝트의 쾌거이자 중력파 천문학의 문을 연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2019년 제임스 피블스, 미셸 마요르, 디디에 쿠엘로

2019년 노벨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피블스, 마요르, 쿠엘로 (사진: 노벨 재단)


 제임스 피블스는 펜지아스와 윌슨에게 우주배경복사 발견의 영예를 넘겨주고 말았던 프린스턴 대학 연구팀의 일원이었다. 비록 최초 발견자라는 타이틀을 얻지는 못했지만 피블스는 계속해서 우주론 분야의 연구를 이어갔다. 그의 연구는 현대 우주론 분야의 초석이 되었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에 관한 수치 역시 그의 이론적 계산이 바탕이었으며 표준모형의 입자들이 우주 팽창 과정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설명했고, 초기 우주 발달 과정에 대한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등 우주론 분야의 거목이라 부를 수 있었다. 결국 우주배경복사 발견은 놓쳤지만 긴 시간이 흘러 피블스의 업적이 인정받을 수 있었다.

 미셸 마요르 교수와 디디에 쿠엘로 교수는 스승과 제자 관계였다. 두 사람이 함께 연구한 분야는 바로 외계행성으로 1995년, 최초로 주계열성을 도는 행성인 페가수스자리 51b를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이 발견은 외계행성 탐색이라는 새로운 도전 과제를 학자들에게 던져주었다. 현재 5000개가 넘는 외계행성을 발견하는 초석이 되었다. 태양계 바깥에도 다른 행성계가 존재하며 이를 연구하면서 태양계의 진화 과정을 거꾸로 살펴보거나 외계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확인하는 등 여러 연구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2020년 로저 펜로즈, 라인하르트 겐첼, 안드레아 미아 게즈

2020년 노벨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펜로즈, 겐첼, 게즈 (사진: 노벨 재단)


 2020년에는 바로 전년도인 2019년에 이어 다시 한번 천문학이 그 영예를 안았다. 다만 이번에는 그 주제가 더 확실하게 정해져 있었으니 바로 블랙홀이었다. 로저 펜로즈는 천문학자라기보다 수학자라 부를 수 있는 인물이었다. 노벨 수학상이 따로 없는 상황에서 수학자가 노벨상을 받은 이례적인 경우였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활용하여 블랙홀의 특이점이 존재함을 증명해냈으며 이 내용이 담긴 1965년의 논문은 창시자인 아인슈타인 이후 상대성이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논문으로 평가받았다. 당시 케임브리지대학 대학원생이던 학생이 이 내용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연구를 이어갔는데 그 학생의 이름은 스티븐 호킹이었다.

 펜로즈가 블랙홀이 이론적으로 존재함을 보였다면 겐첼과 게즈는 각기 다른 연구팀을 이끌며 우리은하 중심에 위치한 블랙홀의 존재를 입증했다. 두 연구팀은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우리은하 중심의 별을 관측하고 그 궤도를 계산해냈다. 그 결과 알아낸 중심 블랙홀의 질량은 두 연구팀에서 매우 흡사하게 나타났다. 태양 질량의 400만배에 달하는 거대한 블랙홀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결국 2020년은 이론과 관측이라는 두 가지 무기로 블랙홀을 찾아낸 학자들에게 돌아갔다.

 2020년을 마지막으로 15번가량의 노벨상이 우주와 관련된 연구에 수여되었다. 물론 이외에도 천문학에 영향을 준 노벨상 연구들은 더 있다. 최근 들어서는 특정 연구를 물리학, 화학, 지구과학, 생물학이라는 커다란 네 종류의 과학으로 나눠서 분류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꼭 별이나 천체를 보고 연구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우주를 이해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모든 과학이 서로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매년 10월 즈음 수상자 예측 기사들 사이에 꼭 들어있는 문구가 있다.

‘왜 우리나라에는 노벨상 수상자가 다른 이웃 나라에 비해 적을까?’

그나마 작년 소설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전 국민이 떠들썩하게 즐거워했던 시기를 보내면서 약간의 염원이 풀어졌지만 아직 노벨 과학 분야 상은 멀고 먼 존재로만 느껴진다. 기본적으로 과학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1~2년의 모습만 보고 평가할 수는 없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협력하고 긴 호흡으로 연구를 이어나가는 지금 시기에 우리가 잘 알지는 못해도 여러 국내 학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최선을 다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당장 최근 천문학 수상 분야인 중력파 관측, 블랙홀 관측, 우주론 모두 수십 년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정수가 아닌가. 결국 노벨 과학상을 위해 필요한 것은 눈앞의 성과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아니라 긴 노력, 긴 관심, 긴 투자. 그리고 긴 인내가 아닐까?

참고자료

  1. 노벨재단 (이광렬, 이승철 역). 2010.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 노벨 물리학상. 바다출판사
  2. 임명신. 2024. 종합·융합과학 천문학에 수여된 역대 노벨상.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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