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초중반. 조르주 르메트르와 에드윈 허블에 의해 우주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류가 우주를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우리은하 정도를 우주의 전체라 생각했던 것이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한 점에서 출발한 빅뱅 우주론이라는 개념이 정착되기 시작했다. 빅뱅을 인정하지 않았던 학계의 반대파들도 지속적인 연구와 그에 걸맞은 증거들이 쌓이면서 점차 입지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펀치나 다름없었던 우주배경복사의 발견은 빅뱅우주론을 정설로 받아들이게 하는 방점이 되었다. 그렇게 우주의 시작에 대한 과학계의 전쟁은 막이 내리나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완벽’이라는 것은 이 바닥에서 함부로 입에 올리기 어려운 것이었다. 빅뱅 우주론에도 아킬레스건은 존재했다.

빅뱅우주론은 당시 알려진 ‘대부분’의 현상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했다. 문제는 ‘대부분’이라는 것 그 자체였다. 대표적으로 빅뱅우주론의 문제점으로 알려진 것은 바로 ‘지평선 문제’였다. 펜지아스와 윌슨이 발견한 우주배경복사는 온 우주에 퍼진 빅뱅 이후 첫 번째 빛의 흔적이다. 관측 결과 이 우주배경복사는 하늘의 어느 방향에서 관측하더라도 거의 동일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완벽하게 동일한 온도를 보인다는 점은 이상한 일이었다. 현재 지구에 날아온 우주배경복사는 약 138억 년에 걸쳐 날아온 빛이다. 그렇다면 서로 반대 방향에서 온 우주배경복사는 서로 276광년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날아온 빛이 된다. 이렇게 먼 거리에 떨어진 두 공간이 서로 완벽하게 같은 모습을 보인다는 점은 이상하다. 우주의 나이가 유한한 이상 우주 정반대 편에 있는 두 공간은 서로 신호를 주고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럼에도 동일하다? 서로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이 완벽하게 동일한 모습을 보일 확률과 다를 바 없는 너무나 이상한 균일성이었다.
지평선 문제만큼 연구진들의 골치를 아프게 만들던 문제는 또 있었다. ‘우주 평탄성 문제’였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해석해 보면 질량과 에너지가 있는 시공간은 곡률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우주에는 바로 우리가 존재한다. 우리가 보는 물질이 존재하는 만큼 우주에는 곡률이 존재할 것이다. 이 우주의 곡률을 계산하면 우주가 다시 수축할지, 아니면 계속 팽창할지 확인이 가능하다. 우주 안에 있는 물질의 양이 그 미래를 결정하게 되는데 이러한 상태를 가지는 밀도를 ‘임계밀도’라고 부른다. 만약 실제 우주의 밀도를 임계밀도로 나눈 값(Ω)이 1보다 크면 중력이 더 크게 작용하여 우주는 수축하게 된다. 반대로 1보다 작으면 우주는 끝없이 팽창하는 열린 우주가 된다. 그런데 빅뱅우주론에 따르면 현재의 Ω값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주 탄생 초기 밀도가 임계밀도와 10⁻¹⁵~10⁻⁶⁰ 수준의 오차로 일치했어야 한다. 도대체 왜 우주가 이렇게 정교한 초기 조건을 가져야 했는가. 그야말로 연필의 뾰족한 부분을 바닥으로 하여 세워놓은 것과 같은 상태의 우주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입자에서도 문제가 남아있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자석은 N극과 S극이 모두 붙어있다. 이 긴 막대자석을 반으로 잘라도 자른 조각마다 N극과 S극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론상으로는 N극만 혹은 S극만 존재하는 상태가 나타난다. 이를 자기홀극이라고 부르며 빅뱅우주론에 따르면 빅뱅 시기에는 이 정체불명의 입자들이 상당히 많이 존재했어야 한다. 만약 이론대로 자기홀극이 존재했다면 현재에도 이 우주 공간에는 자기홀극이 상당수 존재해야 하며 우리가 아직 관측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과연 빅뱅 시기에 있었어야 하는 자기홀극은 다 어디에 있단 말인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만약 우주가 아주 평탄하고 차이가 없는 모습으로 진화했다면 은하는, 별은 그리고 우리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물질이 탄생하려면 재료가 뭉쳐야 한다. 중력적으로 상호작용하여 어떤 구조를 이루려면 필연적으로 어느 곳은 뭉쳐있고 어느 곳은 성긴 공간이 존재해야 했다. 이러한 아주 작은 물질의 씨앗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현재의 우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빅뱅에서 어떤 작용이 있었길래 그 평탄하고 균일한 우주 속에서 거대한 은하단과 은하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일까.

우주배경복사의 발견은 빅뱅우주론에게 축복이었지만 이런 여러 아킬레스건이 남아 적들의 공격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이때 빅뱅우주론을 지켜 줄 용사가 나타났다. 다만 그는 천문학자도 아니었고 우주의 거대한 구조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 빅뱅의 구원자는 MIT 출신의 입자물리학자였던 30대의 젊은 과학자인 앨런 구스였다. 그가 학자로서 활동을 시작하던 1970년대 물리학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대통일이론이었다. 우주에 존재하는 힘을 통합하여 설명하는 꿈의 이론이었던 대통일이론은 입자물리학자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아주 매력적인 주제였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이상한 사실을 하나 알게 된다. 대통일이론에서 예측하는 자기홀극이 실제로는 전혀 발견이 안된다는 사실이었다. 구스가 우주론의 빈틈을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여기에 몇 가지 사건이 추가되었다. 1978년 당시 구스가 있던 코넬대학교에 저명한 천체물리학자인 로버트 디키의 강연이 열렸다. 그는 우주배경복사를 예측하고 찾으려고 했던 선구자 중 한 명이었으며 우주론의 전문가라 볼 수 있었다. 그 강연에서 디키는 현재 우주론에 약점이었던 ‘우주 평탄성 문제’를 설명했다. 뒤이어 역시 훗날 노벨상을 받는 양자론의 거장인 스티븐 와인버그의 강연도 있었다. 이 강연에서는 대통일이론과 우주론의 연결점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얻었다. 우주에는 관심 없던 학자가 우주론의 늪으로 빠져드는 중이었다.
사실 구스는 이런 우주론 연구를 하기에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MIT에서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탄탄대로 같던 그의 앞길은 조금씩 위태로워지기 시작했다. 프린스턴, 콜롬비아, 코넬 등 명문대이기는 했지만 박사후 연구원을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정규직은 너무나 먼 것처럼 보였고 이런 불확실한 미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실적이 필요했다. 그런데 구스가 관심을 가지는 우주론 분야는 그의 전문 분야도 아니었을뿐더러 빠르게 논문 실적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구스는 매달렸다. 그렇게 흐르던 1979년 12월. 캘리포니아에 있는 임대주택에서 구스는 깨달음의 순간을 얻었다. 그는 노트에 대문자로 “SPECTACULAR REALIZATION” 라고 적어놓았다. 그에게 찾아온 놀라운 깨달음은 1달 뒤 1980년 1월, 스탠포드 선형가속기 센터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처음 발표되었다. ‘우주 인플레이션 이론’이었다.

구스는 빅뱅 직후 10-36초에서 10-32초 사이라는 어마어마하게 짧은 순간에 우주가 무려 1026배에서 1078배 사이의 무시무시한 비율로 급팽창했다는 이론을 들고나왔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공간이 팽창하면서 우주가 커졌다는 것인데 이는 정말 멋지게 우주론의 문제점을 해결해 줬다. 우주는 하나의 작은 점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작은 점 속에 섞여있던 것들이 급속도로 팽창하면서 멀어졌고 서로 닿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해 서로 다른 곳의 성질이 비슷했던 ‘지평선 문제’가 해결되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평탄성 문제’의 경우도 어렵지 않았다. 우주 극초기에 어떤 곡률을 가지고 있더라도 급팽창이 벌어지면서 그 휘어짐을 팽팽하게 당겨버린 것이다. 쭈글쭈글하게 있는 풍선을 갑자기 불면 팽팽하게 주름이 사라지는 것처럼 우주가 잡아당겨진 셈이다. 그렇다면 과거 우주 초기 밀도와 상관없이 현재의 특정 Ω값을 보일 수 있었다. 복잡한 초기 조건은 필요 없어진 것이다.

자기홀극도 급팽창으로 설명이 가능했다. 실제로 존재했던 자기홀극이지만 우주가 급격하게 팽창하면서 그 밀도가 너무나 낮아져 버린 것이다. 우리가 현재 자기홀극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거대한 바다에서 작은 특정 모래 알갱이를 찾는 수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주의 구조 역시 간단했다. 우주 초기에는 매우 작은 미시 세계에 존재하는 양자 요동이 있었다. 에너지와 공간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는 이 요동이 급팽창을 겪으면서 거대한 크기로 확대된 것이다. 이 거대해진 양자 요동은 곧바로 우주 초기의 불균일함을 만들어냈고 여기서 은하단, 은하의 씨앗이 심어진 것이다.
우주가 갑자기 커졌다. 어찌 보면 정말 단순한 아이디어였다. 실제로 구스의 발표 이후 물리학계에서는 거대한 파장이 일었다. 거장이었던 스티븐 와인버그부터 여러 학자들은 이 단순한 아이디어를 자신들이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일약 스타덤에 오른 구스는 모교인 MIT에 돌아가 교수직을 받을 수 있었다. 불안정한 떠돌이 생활을 하던 괴짜 과학자의 행복한 이야기가 완성된 것이다.
다만 구스의 인플레이션 이론은 여러 방면으로 공격의 여지를 남겼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높은 에너지를 품은 불안정한 상태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떻게 끝나는 것인가. 모든 높은 에너지의 상태가 기본 입자들로 붕괴하리라 예측할 수는 없다. 물이 100도가 되었다고 동시에 수증기로 변하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상황이다. 팽창한 우주 전체가 균일하게 붕괴하여 기본 입자들이 있는 상태로 전환되지 못하고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상태가 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아는 균일한 우주의 모습이 아니었다. 또한 당시 천문학자들의 관측적인 데이터로는 Ω값이 약 0.3 정도로 보고 있었다. 구스는 인플레이션 이론이 맞는다면 급격한 팽창으로 Ω값이 1에 가까울 것이라 예견했다. 천문학자들 입장에서는 관측 결과와 다른 데이터인데 이를 믿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구스의 이론은 이후 안드레이 린데, 폴 스타인하트, 안드레아스 알브레히트 등 여러 학자들에 의해 수정 보완되면서 그 위상을 공고히 했다. (구스의 이론을 변경하여 인플레이션이 작동하는 원리를 약간 변경하였다. 그 결과 구멍 뚫린 우주라는 문제점을 피할 수 있었다.) 추가적으로 우주배경복사를 더 정밀하게 측정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우주가 매우 평탄하며 균일하다는 사실이 제대로 확인되었다. Ω값 역시 플랑크 위성이 측정한 결과 암흑 에너지의 성분까지 포함할 경우 1에 가까운 것으로 확인되었다. 점점 더 구스의 예언대로 진행되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더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 당시 생성되었을 시공간의 파동이라 생각되는 배경 중력파가 그 주인공이다. 현재 이 배경 중력파를 정확히 측정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주론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연구진도 있지만 아직도 의심을 이어가는 연구진도 있다. 대표적으로 노벨상 수상자이자 영국의 대표 천문학자인 로저 펜로즈는 꾸준하게 인플레이션 이론에 비판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는 인플레이션 이론이 매우 미세하게 조정된 우주의 초기조건 문제를 없앤 것이 아니라 다른 식으로 바꿨을 뿐이라며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실제로 인플레이션 이론이 성립하려면 초기에 이미 어느 정도 정돈된 상태의 우주가 필요하다.) 과연 우주는 어떤 식으로 진화했던 것일까. 과연 미래에 인플레이션 이론을 대체할 또 다른 이론이 떠올라 빅뱅우주론의 아킬레스건을 가려줄 수 있을까. 아주 작은 인류가 이 거대한 우주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여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지금도 그 진실을 위해 전 세계의 수많은 연구진이 제2의 앨런 구스를 생각하면서 책상 앞, 망원경 앞에 자신의 이론을 적어가고 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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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기영. 2018. 우주의 인플레이션에 관하여. HORIZON
- 이충환. 2014. 태초에 우주는 급팽창했노라!. 동아사이언스
- 지웅배. 2020. [사이언스] 우주는 ‘떡락’과 함께 탄생했다. 비즈한국
- 닐 스와이디. 2014. Alan Guth: What made the Big Bang bang?. The Boston Globe
- 아스마 칼리드. 2015. Visionaries: MIT’s Alan Guth Made A ‘Spectacular Realization’ About The Universe. wb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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