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이름이 깃든 캐릭터 이야기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촬영한 에란델의 모습. 은하단의 중력렌즈 효과에 의해 길게 늘어진 형상 속에 작은 점으로 에란델의 모습이 보인다.


 지난 2022년.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한참 주목을 받고 있던 때, 망원경으로서 노년(?)의 길로 가고 있던 허블 우주망원경이 특별한 발견에 성공했다. 고래자리 부근에서 관측 역사상 가장 멀리 떨어진 별을 포착한 것이다. 은하단에 의해 만들어진 중력렌즈 효과로 확인된 별 WHL0137-LS에는 특이한 이름이 붙게 되었다. 에렌델(Earendel)이라는 이 이름은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단어이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유명한 판타지 소설 작가 J.R.R 톨킨의 창작 캐릭터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 전작인 실마릴리온이라는 책에서 중간계를 구한 영웅으로 등장하는 에렌델은 이름 뜻 자체가 샛별, 떠오르는 빛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쩌면 129억 광년 떨어진 저 먼 곳에 있는 별에 더 신비로운 의미를 담고 싶었을지 모른다.

반지의 제왕 영화에는 에란델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아들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바로 요정의 영주로 나오는 엘론드(휴고 위빙)이다.


 이처럼 이름이라는 것은 사람에게도 중요하지만 별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에렌델의 경우는 기존에 있던 창작 캐릭터의 이름을 별에 붙인 것이라면 반대로 캐릭터의 이름에 별의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경우도 종종 보인다. 과연 어떤 별의 이름이 어떤 영화 작품 속에서 사용되었을지 살펴보도록 하자.

비틀주스(1988년 작)

비틀주스의 포스터 가운데에 위치한 해괴한 모습의 인물이 비틀주스이다.


 비틀주스는 1988년에 개봉한 영화로 기괴하고 컬트적인 분위기의 작품으로 유명한 팀 버튼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영화 포스터에 쓰여있는 글자도 그렇고 제목부터가 비틀주스(Beetlejuice)인데 여기 어디에 별 이름이 있는 것일까.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개봉할 때는 유령신부라는 이름으로 걸려 있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베텔게우스 스펠링


 비틀주스라는 영화의 제목은 영화 속 등장인물인 유령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잘 보면 그 이름이 딱정벌레(beetle) + 주스(juice)라는 기괴한 단어가 아니라 다른 알파벳으로 쓰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Betelgeuse. 우리가 겨울철 대표 별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베텔게우스이다. 실제 캐릭터의 이름이 딱정벌레 주스라는 기괴한 단어가 아니라 아름다운 별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비틀주스가 나온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실제로 베텔게우스 별의 영어 발음이 비틀주스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훗날 배트맨 캐릭터로 유명해지는 마이클 키튼이 연기한 비틀주스는 산 자들을 위협하는 악역에 가까운 유령이다. 겉으로 보이는 비주얼부터 행동 하나하나 빛나는 별을 이름으로 가진 것으로 전혀 생각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배경에서 코미디적인 장르를 섞다 보니 캐릭터 이름에서도 발음을 통한 장난을 넣어 재미 요소로 사용하고 있다. 본인 이름을 알려주기 위해 별 이름으로 설명하지 않고 딱정벌레와 주스를 통해 연상시키는 장면은 그 요소를 더욱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확대하여 촬영한 베텔게우스의 모습


 사실 베텔게우스는 나이가 굉장히 많은 적색초거성이다. 2020년 잠시 그 밝기가 비정상적으로 떨어져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 아니냐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니 이미 별의 일생에서 그 마무리 단계를 지나고 있다. 거리가 약 600광년에 가까우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베텔게우스는 죽어 있고 초신성으로 폭발한 빛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죽은 자가 산 자에게 영향을 주는 영화 속 비틀주스는 죽은 상태에서도 우리에게 빛을 전달하여 영향을 주고 있는 베텔게우스와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페이스 오프(1997년 작)

페이스 오프 포스터


 페이스 오프는 1980년대 홍콩 느와르 영화의 거장인 오우삼 감독이 헐리우드로 진출하여 작업한 작품 중 하나이다. 1990년대 최고 스타 중 하나인 니콜라스 케이지의 대표작으로도 뽑히는 이 작품에는 대놓고 별자리에 포함된 별 이름이 극 중 배역에 사용되고 있다. 주연 니콜라스 케이지의 배역과 그 동생으로 나오는 배역의 이름이 카스토르와 폴룩스인 것이다.

쌍둥이자리의 모습과 카스토르, 폴룩스 별의 위치 (사진: 의왕어린이천문대 훈남쌤)


 카스토르와 폴룩스는 쌍둥이자리에 위치한 별로 각각 신화 속 쌍둥이의 이름과 동일하다. 제우스의 아들로 서로 매우 사이가 좋아 형인 카스토르가 먼저 죽은 후 그 우애를 높이 사 두 사람을 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었다는 것이 간단한 신화 개요이다. 이 영화 속 카스토르와 폴룩스 형제 역시 사이가 매우 좋은 것으로 등장하는데 신화에서는 동생인 폴룩스가 조금 더 강력한 것으로 묘사되나 영화에서는 반대로 형인 카스토르가 훨씬 활동적이고 강한 것으로 나타난다.

헬레네를 구하는 카스토르와 폴룩스(1817). 프랑스의 화가 장 브루노 가시스의 작품이다.


 또 특이한 것은 이 두 형제의 성이다. 트로이(Troy)라는 성을 사용하는데 이는 그리스 신화 속에서 상당히 인기 있는 트로이 왕가, 트로이 전쟁에서 나타나는 지역명과 동일하다. 이 트로이 전쟁을 일어나게 만든 아름다운 왕비 헬레네가 카스토르, 폴룩스 쌍둥이의 여동생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성 역시도 그냥 지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해리포터 시리즈(2001~2011년 작)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포스터. 이 3편부터 본격적으로 시리우스 블랙이 등장한다.


 판타지 소설, 특히 영화 역사에서 상당한 파괴력을 보여준 해리포터 시리즈에는 역시 수많은 별과 별자리 이름이 캐릭터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한 가문을 통으로 별자리와 관련된 이름으로 만들어놨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캐릭터가 주인공 해리포터의 대부인 ‘시리우스 블랙’일 것이다.

큰개자리와 시리우스의 위치. 왼쪽에 위치한 별자리는 작은개자리와 외뿔소자리이다. (사진: 의왕어린이천문대 훈남쌤)


 이름으로만 봐도 알 수 있듯 시리우스는 밤하늘에 가장 밝은 큰개자리 별의 이름이다. 이 큰개자리라는 것 역시 캐릭터에 녹아 있는데 극 중 시리우스가 변신하는 동물이 바로 거대한 개다. 가장 밝은 별에 붙은 성이 검은색을 의미하는 블랙이라는 점이 안 어울려 보일 수 있는데 애초에 별이 존재하는 우주가 검게 보인다는 걸 생각하면 딱 맞는 성이라 생각할 수 있다.

영화 속 시리우스 블랙(게리 올드만)의 모습


 시리우스의 동생의 이름은 레굴루스 블랙. 역시 사자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의 이름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별자리 오리온에서 따 왔으며 사촌이자 숙적으로 등장하는 벨라트릭스는 오리온자리에 위치한 별 이름과 같다. 이 밖에도 삼촌인 알파드 블랙(바다뱀자리에 위치한 별 이름), 삼촌 시그너스 블랙(백조자리를 시그너스라 부른다.), 사촌 안드로메다 통스(안드로메다 별자리에서 따 왔다.). 마지막으로 가문 직계는 아니지만 연관되어 있으며 영화 속 주요 캐릭터인 드레이코 말포이 역시 용자리를 의미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배트맨 비긴즈(2005년 작)

배트맨 비긴즈 포스터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 가장 완벽한 시리즈라고도 평가받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의 첫 번째 작 배트맨 비긴즈.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별과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 작 중 빌런 역할로 등장하는 캐릭터 ‘라스 알굴’이 그 주인공이다.

페르세우스자리와 알골의 위치 (사진: 의왕어린이천문대 훈남쌤)


 라스 알굴은 배트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여러 빌런 캐릭터 중 하나이다. 아랍어로 ‘악마의 머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와 같은 의미를 지닌 별이 존재한다. 가을철 대표 별자리인 페르세우스자리의 ‘알골’이다. 역시 캐릭터와 동일하게 악마의 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재미있게도 그리스 신화 속 페르세우스가 죽인 메두사의 머리에 해당하는 별로 상당히 불길한 별로 알려져 있는데 동양에서 역시 ‘적시’라고 부르며 시체가 쌓인다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알골 별의 상상도. 알골이 밝기가 변하는 변광성이 된 이유는 두 개의 별이 서로를 돌면서 주기적으로 별빛을 가리기 때문이었다. 이를 식쌍성이라 부른다.


 실제 알골이 이런 험악한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별 자체가 빛이 변하는 변광성이라는 점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큰 차이 없이 하늘에서 빛나는 다른 별과 다르게 눈에 띌 정도로 밝기가 변하는 알골을 이상하게 여긴 것은 당연했다. 그 결과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흉조를 나타내는 별이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캐릭터 입장으로 볼 때, 영화 속 고담시를 위협하는 악당에게 최적의 이름이 아닌가 싶다.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을 설명하는 가장 첫 번째 요소가 되기 마련이다.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면 왜 우리는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어떤 이름을 줄지 그렇게 오래 고민하며 시간과 돈을 쓴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가상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 역시 이름을 통해 첫 번째 인상을 남기게 된다. 그런 만큼 많은 창작자들이 이름을 정하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만큼 중요한 이름에 별이 깃든 모습을 보면 천문학을 공부한 입장에서 상당히 반가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 비록 그 의미가 별과 큰 관련이 없더라도 사람에게 깃든, 지상으로 내려온 별의 이름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을까.

 별을 통해 사람의 운명을 보고 설명하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나갔지만 이제는 이름만 남아 약간의 감성을 더해주는 요소로 이만한 단어들이 또 있을지 모르겠다. 시리우스, 카노푸스, 아크투루스, 베가, 카펠라, 레굴루스, 스피카 등등. 인류가 오래전에 하늘에 붙여 준 단어가 다시 천천히 내려오는 것을 느껴보자. 그것이 별 이름이 주는 묘한 감정일 것이다.


참고자료

  1. 비틀주스. 팀 버튼. 워너브라더스. 1988
  2. 페이스 오프. 오우삼. 파라마운트 픽쳐스. 1997
  3.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알론소 쿠아론. 워너브라더스. 2004
  4. 배트맨 비긴즈. 크리스토퍼 놀란. 워너브라더스. 2005
  5. 이정현. 2002. 허블 망원경, 지구에서 가장 멀리 있는 별 발견 [우주로 간다]. ZDNET Korea
  6. 지웅배. 2022. [사이언스] 허블이 포착한 130억 년 전 별 ‘에렌델’의 정체. 비즈한국
  7. 에이드리언 타일러. 2019. The Real-Life Origin Of Beetlejuice’s Name. SCREEN R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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