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과학사: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의지

 2010년 6월 13일 밤 11시 52분. 호주의 우메라 사막에 낙하산을 편 캡슐이 떨어졌다. 이 캡슐은 2003년 5월 발사된 JAXA의 탐사선 하야부사 1호가 인류에게 전한 마지막 선물이었다. 어쩌면 인류 우주탐사 역사상 가장 험난한 여정을 떠나야 했던 하야부사 1호. 과연 이 탐사선이 보냈던 7년의 탐험에는 어떤 난관이 있었던 것일까.

호주 우메라 사막에서 회수된 하야부사 탐사선의 샘플


 아폴로 우주선이 달의 흙을 지구로 가져온 이후 다른 천체의 토양을 지구로 가져오려는 계획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었다. 1985~2000년 사이에 지구 근접 소행성인 안테로스에 착륙하여 샘플을 채취하려는 계획이 연구되기도 했다. 다만 소행성에 착륙한다는 것 자체가 난이도가 너무 높은 미션인지라 실행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그 사이 1996년 발사된 NASA의 소행성 탐사선인 니어-슈메이커가 2001년 역사상 최초로 소행성 에로스에 착륙하는 것을 성공했다. 물론 애초에 계획되어 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착륙 장치는 있지도 않았고 연료가 거의 남지 않은 상태에서 적당히 충돌한 것에 가깝기는 했다. 그래도 착륙 후 통신이 이어지기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동이었다.

니어-슈메이커호가 촬영한 에로스 소행성의 모습


 우주 탐사의 어려운 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소행성에 착륙했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소행성에 다가가서 착륙 후 샘플을 채취해서 다시 지구를 향해 온다?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고난도의 기술을 요한다. 결국 일본의 JAXA(당시에는 ISAS라는 이름의 기관이었다.)에서는 몇몇 후보 소행성을 추리다가(로켓 개발 지연으로 소행성의 적당한 궤도 타이밍을 놓친 경우가 많았다.) 1998 SF36을 최종 목적지로 선정하였다.

하야부사의 모형. 전면부에 보이는 4개의 구멍이 이온엔진이다.


 2003년 5월 9일. 하야부사 탐사선이 지구를 떠났다. 이 탐사선은 물론 소행성 샘플 채취라는 커다란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외에 여러 미션이 추가되어 있었다. 당시 막 개발되고 있던 이온엔진이 탑재되어 있었으며 일본의 우주탐사 항행기술을 시험할 기회이기도 했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그러나 첫 번째 시련은 곧 찾아왔다. 같은 해 11월 4일 태양에서 어마어마한 플레어가 일어났다. 2003년은 태양 활동이 매우 활발했던 때로 10월에는 우리나라에서 오로라가 발견되기도 했으며 11월 4일 일어난 플레어는 미국의 정지기상위성인 GOES가 측정할 수 있는 최대수치였다. 그리고 이 플레어가 하야부사를 덮쳤다. 플레어는 태양전지판에 문제를 만들었고 이는 이온엔진의 효율을 낮추고 말았다. 탐사선이 목적지에 도착하게 될 시간이 늦어지게 되었고 이는 소행성에 머물 시간이 줄어들었음을 의미했다.(지구로 귀환하기 위해서는 알맞은 궤도에 소행성이 위치할 때 정확히 탐사선이 떠나야 했다.)

소호 위성이 촬영한 2003년 11월 4일의 플레어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하야부사의 이온엔진은 성공적이었다. 2004년 5월. 다시 지구로 돌아온 탐사선은 스윙바이를 통해 소행성으로 가기 위한 속도를 추가로 얻었다. 이온엔진으로 진행된 최초의 스윙바이였으니 의미 있는 성과였다. 조금 늦어지긴 했어도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했던 하야부사의 여정은 곧 또 다른 난관을 마주하게 되었다. 자세 제어장치인 리액션 휠 중 하나가 고장 난 것이다. 이미 4개의 이온 엔진 중 하나가 고장 난 상태였는데 자세 제어까지 불안정한 상태로 항해를 지속해야 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여행하던 하야부사는 2005년 9월 12일. 소행성과 랑데부를 하였다. 초여름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계획은 늦어졌지만 다행히 목적지에 다다랐다. 이제 남은 것은 터치다운이었다. 하지만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10월 3일. 두 번째 리액션 휠도 고장 났다. 탐사선은 하나 남은 휠과 연료를 사용하는 자세 제어장치를 써야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었지만 아직 포기하기엔 일렀다. 목표가 눈앞이었다. 탐사선은 소행성을 향해 하강 미션을 준비했다.

하야부사가 촬영한 이토카와 소행성의 사진. 이토카와라는 이름은 일본 로켓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토카와 히데오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탐사선 발사 3개월 후에 이름으로 등록되었다.


 11월 4일. 첫 번째 착륙 연습이 진행되었다. 점점 표면으로 다가가던 탐사선은 700m 고도에서 이상 신호로 인해 착륙 연습을 포기했다. 11월 9일. 두 번째 연습으로 70m 고도까지 접근하였다. 11월 12일. 탐사선은 다시 하강을 하면서 55m 고도까지 내려오는 것에 성공했다. 그런데 이때 탐사선에 탑재되어 있던 소형 탐사 로버 ‘미네르바’가 방출되고 만다. 이미 하야부사는 55m 고도를 찍고 상승하던 상태에서 방출된 것 때문에 로버 미네르바는 소행성에 착륙하지 못하고 우주를 떠돌게 된 것이다. 힘겹게 운송한 탐사 장비 하나가 사라져버린 순간이었다.

미네르바 탐사 로버의 상상도. 중력이 약한 소행성의 표면에서 통통 튕기면서 이동하는 것을 생각했다.


 로버가 사라졌지만 탐사선의 목표는 아직 남아있었다. 11월 19일. 하야부사는 다시 하강을 시작했다. 고도 약 40m. 타깃 마커가 방출되었다. 소행성에 안착한 마커는 탐사선이 착륙할 때 기준이 되어 준다. 초속 12cm였던 하강 속도는 마커 방출 때 초속 3cm로 줄었다. 하강 속도는 점점 더 낮아진다. 고도 17m. 우주선은 하강 속도를 0으로 맞췄고 이때부터 자유낙하를 시작한다. 남은 것은 착륙뿐이었다. 그리고 하야부사는 연결이 끊겼다.

JAXA에서 공개한 이토카와 표면의 마커(흰색)와 하야부사 그림자


 연결이 끊긴 동안 연구진은 탐사선의 착륙이 실패했다 판단했다. 하지만 하야부사는 살아있었다. 추후에 분석한 결과 소행성에 충돌한 탐사선은 탱탱볼 마냥 표면에서 튕겨 이동했으며 약 30분 가까이 100도가 넘는 지면에서 버틴 것을 알 수 있었다. 긴급 상승 명령이 간신히 전달되어 이륙하고 시간이 지나서야 소행성 최초의 착륙 후 이륙에 성공했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남아있었다. 착륙 후 이륙. 딱 이것만 성공한 것이다. 기존 하야부사의 계획은 쇠구슬 같은 장치를 날려 표면에서 튀어 오른 샘플을 채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착륙 당시 안전 모드에 들어가 통신이 끊긴 것 때문에 샘플 채취에는 실패했다.

하야부사 탐사선의 착륙 시 고도 그래프. 21시 10분부터 착륙 후 튕겨 올라온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도 기회는 남아있었다. 남아있는 시간상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다. 11월 25일. 하야부사의 착륙이 다시 시작되었다. 안정적인 하강이었다. 샘플 채취를 위한 구슬 발사도 이뤄진 것으로 보였다. 이제 이륙 후 지구로의 귀환만 하면 된다. 이제 성공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하야부사는 다시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연료가 누출된 것이다. 연료 누출로 자세 제어에 실패, 태양전지 발전량 저하, 배터리 방전 등 온갖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거기에 탐사선이 원하는 방향을 잡지 못하면서 통신에도 문제가 생겼다.

하야부사의 샘플 채취 방법 상상도(JAXA). 구슬이 때려서 나온 흙먼지를 채취하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2차 착륙 당시 쇠구슬이 제대로 발사되었는지 불명확하다는 분석 결과까지 나왔다. 하야부사는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샘플을 들고 궤도를 벗어난 것이다. 이제 하야부사도 먼저 미아가 된 미네르바 로버처럼 우주를 떠돌게 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착륙에는 성공했으니 절반의 성공이라 생각하고 탐사선을 포기했을 때 연구진은 끊임없이 교신을 시도했다. 그 노력이 가상했는지 7주 만에 하야부사에게서 미약한 신호가 왔다. 단 20초 동안만 연결되었다가 끊어지기를 반복하는 이 빈약한 신호줄을 붙잡은 연구진들은 서둘러 자세 복구를 위한 명령을 보냈다. 이미 화학 엔진을 이용한 자세 제어는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 이온 엔진과 태양에서 날아오는 광자의 압력을 이용해 자세 제어에 사용하였다. 그리고 탐사선이 복귀하기 위한 새로운 계획을 진행해야 했다.

 간신히 자세를 잡은 하야부사는 바로 지구로 출발하지 못했다. 궤도를 계산한 결과 출발 시기는 2007년. 기존 계획에서 2007년 6월 도착 예정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늦어진 출발이었다. 잠시 멈춰있던 하야부사의 이온엔진이 2007년 4월 25일 지구를 향해 재점화했다. 목표는 2010년 6월. 기존보다 3년이나 늦어진 귀환길이었다.

JAXA의 이온 엔진. 하야부사 미션으로 이온 엔진의 검증이 제대로 성공했다.


 하야부사는 귀환길 마저도 순조롭지 못했다. 출발할 당시 4개 있던 이온 추력기 중 2개가 고장 나 있던 상태에서 남은 2개 중 1개마저도 2009년 11월 고장이 나고 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고장 났었던 엔진 2개를 하나로 묶어 사용이 가능하도록 (서로 멀쩡한 부분을 합쳐 사용하려 했다.) 업데이트했다. 여기에 중간중간 노후화된 탐사선 장비 때문에 메모리 에러가 자주 일어났으며 그로 인해 궤도를 벗어났다가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야말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이어나가는 정신 그 자체였다.

캡슐을 분리한 이후. 고장난 몸으로 찍은 하야부사 탐사선의 마지막 사진. 얼마나 탐사선의 상태가 좋지 않았는지 사진으로 알 수 있다.


 2010년 6월.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하야부사가 지구 궤도에 들어왔다. 3개 중 2개가 고장 난 리액션 휠, 누출로 인해 작동 불능이 된 화학 연료, 4개 중 2개가 고장 난 이온엔진, 11개 중 7개만 작동하는 배터리. 돌아온 것이 기적에 가깝던 하야부사는 마지막 임무를 위해 지구 대기권으로 진입했다. 뭐가 얼마나 담겨 있을지 알 수 없었던 하야부사의 캡슐이 분리되었다. 그리고 본체는 대기권에 불타 길고 험난했던 자신의 생애를 마감했다. 그야말로 장렬한 전사였다.

지구 대기권에서 산산조각이 나는 하야부사의 마지막 모습


 다행히도 회수된 하야부사의 캡슐에는 극소량이지만 이토카와 소행성의 토양이 담겨 있었다. 해당 샘플은 지구로 회수된 최초의 소행성 토양이 되었으며 연구에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실제로 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탐사에 자신감을 얻은 일본은 하야부사 2호를 발사해 소행성 류구의 샘플을 채취해 돌아오는 것에 다시 한번 성공했다. 선배 탐사선의 여정에서 보완된 미션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하야부사가 가져온 샘플의 모습


 우주 탐사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아무리 많은 준비와 연습을 거쳐도 저 광활한 우주에서는 무슨 문제가 닥쳐올지 예상할 수 없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많은 지식과 경험이 뒷받침해주는 ‘의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탐사선을 포기했을 때 연구팀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많은 기계 장치가 말을 듣지 않아도 하야부사는 끝까지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 분명 감정이 없는 기계일 텐데도 우리가 이 탐사에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모든 도전이 끝나는 순간은 ‘포기’하는 순간이다. 하야부사는 그것을 보여주었다.

참고자료

  1. 엘리자베스 하웰. 2018. Hayabusa: Troubled Sample-Return Mission. SPACE.com
  2. 미카 맥키넌. 2015. Everything That Could go Wrong for Hayabusa Did, and Yet it Still Succeeded. Gizmodo.com
  3. 레너드 데이비드. 2005. Unbowed by Robot Loss, Japan’s Asteroid Probe Readies For Touchdown. SPACE.com
  4. 와타나베 치사키. 2005. Japan’s Hayabusa Spacecraft Lands Successfully on Asteroid. SPACE.com
  5. 오요한. 2018. ‘불굴의 탐사선’ 하야부사의 귀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6. 강민구. 2018. 과학자 집념 ‘하야부사’ 기적, 日 우주 새지평 또 연다. Hello DD
  7. 정남구. 2019. ‘천신만고’ 우주 탐사 일 열도에 감동을 쏘다. 한겨례
  8. 유용하. 2019. [달콤한 사이언스]지구의 ‘물’ 어디서 왔나 보니…‘하야부사1호’ 처음 발견. 서울신문
  9. 2010. 日 “하야부사 귀환은 끈기의 산물”. 연합뉴스
  10. JAXA 홈페이지
  11. NASA 하야부사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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