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5월 20일. 미국 메릴랜드 주에 위치한 NASA 고다드 우주센터에 여러 천문학자들이 모여 있었다. 언론의 관심을 듬뿍 받은 이날. 한 달 전인 4월, 우주로 발사된 허블우주망원경이 첫 번째 사진을 촬영하는 날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대단한 사진을 보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학자들 앞에 검은 배경에 하얀 점이 그려진 사진 한 장이 떴다. 분명 우주 사진이었다. 그러나 천문학자들에게는 뭔가 이상함이 느껴졌다. 우주까지 날아간 거대 망원경이 찍어서 보내온 사진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NASA의 명운이 걸린 거대 프로젝트에 시작부터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NASA는 언론에 아직 초점 작업 단계에 있다면서 이런 상태에서도 사진의 품질이 나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제 한 달이 된 허블우주망원경의 첫 사진은 당연하게도 테스트 사진이었다. 연구팀들 역시 초점을 조절하면 기대했던 품질의 사진이 나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기대를 뚫고 허블이 보내오는 사진에는 문제가 여전했다. 결국 한 달이 지난 6월. NASA는 기자회견을 열어 망원경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 언론의 어마어마한 집중포화가 이어졌다. 발사 후 초기 운용까지 15억 달러가 투입된 초대형 프로젝트인데 지상에서 찍은 것과 큰 차이가 없다니 그야말로 물어뜯기 좋은 먹잇감이었다. 연구팀은 대책을 세워야 했다. 허블우주망원경은 이렇게 포기할 수 없는 그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망원경이라는 도구가 발명되고 관측할 수 있는 천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천문학의 발전 속도까지 가속 페달을 밟고 있었다. 그런 천문학 관측의 발전도 이겨낼 수 없는 방해물을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대기’였다.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뿐 아니라 자외선 같은 보이지 않는 빛을 이용하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지구에는 대기라는 방해물이 존재했다. 천문학 관측을 위해 지구 대기를 없앤다는 것은 의도 자체도 말이 안 될뿐더러 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로 우주로 나가서 관측을 하자는 아이디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기를 없앨 수 없다면 대기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46년 V-2 로켓을 이용한 태양 자외선 촬영이었다. 대기 바깥에서 천체를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사건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이와 관련된 아주 흥미로운 논문이 발표되었다. ‘Astronomical Advantages of an Extraterrestrial Observatory(지구 바깥 천문대의 천문학적 장점)’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쓴 사람은 프린스턴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예일에서 근무하던 천문학자인 라이먼 스피처였다. 그는 이 논문에서 우주에 망원경을 설치하면 어떤 이점이 있는지 상당히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대기의 흡수로 인해 사라지는 빛도 없고 대기 산란으로 인해 보기 힘든 어두운 천체들도 확인할 수 있고 날씨와 관계없이 지속적인 관측도 가능하다. 그가 이 논문을 쓰기 이전에는 막연하게 공상 과학 수준으로 상상만 하던 것을 자세히 논문으로 정리해낸 것이다.

물론 그의 논문이 나온 1946년에는 우주망원경은커녕 유인 우주비행도 없었고 인공위성조차 없던 시기였다. 동료 학자들 역시 문제 인식은 하고 있었으나 기술적인 실현 가능성을 생각하면 너무나 먼 이야기처럼 보였다. 스피처의 이야기는 그저 먼 미래에나 생각해 볼 법 한 내용처럼 보였다. 그리고 당시 천문학자들은 지상에 거대 망원경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던 시기였다. 아직 우주는 미지의 세계였다. 그곳에 사람조차 가지 못했는데 우주망원경을 꿈꾸기에는 조금 일러 보였다.
그렇게 스피처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까지 긴 시간을 기다렸다. 생각 외로 우주 기술의 발전은 금방 찾아왔다. 소련이 스푸트니크를 발사하면서 미국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유인 달 탐사라는 거대한 미션을 진행하면서 당연하게도 우주 기술에 어마어마한 돈이 투자되어 발전 속도가 가속되었다. 이제 우주에 망원경을 올리는 계획도 완전히 허황된 꿈은 아닌 걸지도 몰랐다. 다만 천문학계가 모두 이 생각을 지지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연구를 위해 주어진 자원은 한정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 거대한 우주망원경이 그 자원을 블랙홀 마냥 빨아들이는 것을 경계했다. 그리고 완성된다고 해도 이 비싼 기계가 우주에서 제대로 작동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아직 천문학자들에게는 우주에 올리는 망원경보다 지상에 만드는 거대한 망원경이 더 안전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천문학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던 우주망원경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또 다른 사람은 NASA의 우주천문학 프로그램 담당자였던 낸시 그레이스 로먼이었다. 그녀는 NASA의 수석 천문학자로서 우주망원경 프로젝트의 핵심 인물이었다. 기존 천문학에서 대형 프로젝트는 몇몇 갑부들의 자선사업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우주망원경은 스케일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 없이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녀는 NASA에서 근무하면서 정부의 지원과 천문학자들의 지원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주 개발에 혈안이었던 정부의 지원을 얻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으나 여전히 천문학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지상에 거대 망원경인 헤일 망원경을 만드는데도 20년이 넘게 걸렸던 기억을 가진 학자들에게 우주망원경은 너무 큰 도전처럼 보였다.

로먼의 지휘 아래, NASA는 OAO(Orbiting Astronomical Observatory)라 불리는 작은 우주망원경 4대를 발사했다. 4대 중 2대만 성공했지만 우주에서 관측이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보여줬다. 이제 다음 스텝을 밟을 차례였다. 스피처가 꿈꿨던 대형 우주망원경이 NASA의 다음 목표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Large Space Telescope라는 임시 명칭이 붙은 이 프로젝트는 단일 과학 프로젝트로서는 상당히 큰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1970년대 계획을 나름대로 구체화시키면서 약 5억 달러라는 예산을 생각했으나 곧 문제가 생겼다. 달 착륙 이후 베트남전 등 다른 현안으로 시선을 돌린 미 의회가 우주망원경에 들어가는 예산을 삭감하려 한 것이다. 그들에게 망원경 하나를 우주에 올리는 것에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자한다는 것은 낭비로 보였던 것이다.
재미있게도 외부에서 공격이 들어오니 서로 갈라져서 잘 뭉치지 못하던 천문학계가 한 몸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NASA는 높은 예산을 감당하기 위해 유럽우주국과 협력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우주망원경에 다양한 종류의 기능을 탑재하여 각 분야의 천문학자들이 원하는 바를 이뤄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자신의 연구비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했던 천문학자들은 우주망원경이 많은 분야에서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했고 정부의 예산 삭감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정했던 구경의 크기도 3m에서 2.4m로 줄이기로 합의하며 예산도 자체적으로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살아남기 위한 이런 몸부림과 끈질긴 설득을 통해 우주망원경은 살아남았다. 이제 제작과 발사라는 다음 미션이 기다리고 있었다.

망원경 프로젝트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다. 제작 과정에서 비용이 3배 가까이 상승했으며 우주왕복선으로 우주에 올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하필 챌린저호 참사가 터지면서 발사가 무기한 연기되었다. 이렇게 1980년대는 천문학자들의 꿈이 이뤄지기 참 힘든 시기였다. 그나마 다행히 1990년 4월 24일.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 탑승한 망원경이 궤도로 올라갔다. 미국 천문학계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에드윈 허블의 이름을 따 ‘허블우주망원경’이라 불리게 된 이 거대 망원경이 스피처가 논문을 발표한 후 4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 드디어 우주에 떠오른 것이다. 이런 감격스러운 상황. 허블망원경의 첫 사진이 더 심각한 문제로 다가왔다.

문제가 생겼으면 그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연구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초점 조절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카메라가 제대로 정렬되지 않은 것인지, 기기의 온도가 예상만큼 충분히 떨어지지 않은 것인지. 정말 다양한 문제를 놓고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그러나 어떤 가정도 실제 사진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하지 못했다. 분명 다른 문제가 있었다. 이제 그들은 절대 떠올리기 싫었던 최악의 문제 상황을 직시해야 했다. 망원경의 가장 큰 주경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 가능성은 사진을 처음 보자마자 제기되었던 것이었다. 다만 연구팀이 이 최악의 상황을 뒤로 미뤄놓고 다른 가능성을 체크했을 뿐이었다. 망원경 렌즈가 제대로 연마되지 않아 곡면이 달라지면 중심부와 외곽에서 반사된 빛이 서로 다른 초점을 맺어 ‘구면수차’라는 것이 발생한다. 이미지 속 별의 모습은 구면수차가 나타난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수치적으로 계산한 결과는 한 달 정도가 지난 6월. 확정되었다. 문제는 구면수차. 허블망원경의 주경에 문제가 있었다.

당대 최고의 기술로 제작되었어야 할 망원경의 주경에 왜 문제가 생긴 것일까. 허블망원경의 주경은 퍼킨-엘머 사가 담당하여 제작하기로 되어 있었다. 퍼킨-엘머는 정찰 카메라, 군사용 고해상도 광학기기 등을 만드는 당대 최고의 초정밀 광학 기구 제작 회사였다. 기대대로 NASA로부터 야심 차게 허블망원경 주경 제작 미션을 받은 퍼킨-엘머였지만 사실 이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금액이었다. 망원경 제작을 입찰받기 위해 비용을 너무 적게 적어낸 것이 문제였다. 거기에 망원경이 요구하는 거울의 스펙은 기존에 회사에서 제작하던 것들과 차원이 달랐다. 훨씬 정밀하게 연마하고 측정해야 했던 터라 기존에 NASA에게 제안했던 일정을 도저히 맞출 수 없었다. 늦춰진 일정에 따라 NASA 역시 인건비, 유지비 등 총예산이 상승하는 압박에 시달렸고 그 압박감은 퍼킨-엘머 사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이런 와중에도 퍼킨-엘머 사는 자체적으로 최신 기술을 도입하여 null corrector라는 장치를 허블 주경에 맞춰 제작했다. ‘null corrector’는 거울을 복잡하게 연마할 경우 얼마나 정확하게 제작되었는지 확인하는 장치였다. 퍼킨-엘머는 이 장치 안에 거울을 배치하는 것만 몇 주가 걸렸다. 그런데 아무리 움직여도 이상하게 거울의 정렬이 잘 맞지 않았다. 이미 일정이 많이 지체된 마당에 정렬이 잘 맞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거울을 빼고 확인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현장 작업자들은 작은 와셔를 가져와 브래킷에 끼워 넣어 나름의 조정 작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문제가 해결된 것 같았다.
NASA나 퍼킨-엘머 측에서는 주경이 만들어진 이후 재차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런데 테스트 결과가 조금 이상했다. 거울의 초점이 약간 어긋난 것처럼 보였다. NASA도 이상함을 느꼈다. 재측정을 요구했어야 하지만 역시나 늦어진 일정이 문제였다. 퍼킨-엘머 역시 허블만을 위해 만들었던 null corrector의 측정치를 신뢰했다. 다른 측정은 오차가 크기 때문에 부정확하다고 넘겨짚은 것이었다. 주경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NASA는 즉시 퍼킨-엘머 사를 찾았다. 그리고 허블을 측정한 이후 그대로 남아있던 null corrector 속에서 정렬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이때 와셔로 인해 생긴 오차는 약 1.3mm였다. 이 오차로 인해 주경 가장자리에 생긴 오차는 고작 2.2 마이크론으로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30분의 1 수준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망원경을 살릴 방법을 찾는 일이었다. NASA 과학탐사 역사상 가장 처참한 실패로 남지 않으려면 저 주경에 무언가 작업을 해야 했다. 실제로 예비용 주경을 코닥에서 만들어놓기는 했으나 우주에 있는 망원경을 내려 주경을 교체하고 다시 올리는 것, 우주에서 주경을 바꾸는 것 모두 경제적으로 보나 미션 난이도로 보나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망원경 앞에 따로 제작한 보정 렌즈를 장착하는 것도 안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그리고 허블은 주경뿐 아니라 태양 전지판에도 문제가 생겨 심한 진동까지 만들어지고 있었다.
결국 연구팀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망원경 안에 들어가 있는 모듈을 하나 제거하고 보정 장치를 따로 개발해서 넣기로 한 것이다. 망원경 앞에 씌우는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안경을 장착시키자는 뜻이었다. 이를 위해 초고속 밝기 측정 장치(HSP: High Speed Photometer)라는 장치를 포기해야 했다. 빠른 시간 단위로 밝기 변화를 측정하는 장치로 변광성이나 펄서같이 주기적으로 변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장치였다. 물론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날벼락이었지만 그나마 다른 장비들보다 영향 범위가 작다는 이유로 허블 안경을 위한 자리를 내줘야 했다.

NASA가 허블을 위한 안경을 제작할 수 있는 제한 시간은 약 3년 정도였다. 우주왕복선으로 우주인이 직접 가서 교체 작업을 실시해야 했다. 짧은 시간 안에 개발해야 하는 장비가 COSTAR(Corrective Optics Space Telescope Axial Replacement)라 불리는 공용 보정 장치와 기존 카메라에 보정 기능을 추가하여 업그레이드한 WFPC2 카메라였다. 그나마 WFPC2의 경우는 애초에 개발이 예정되어 있었다지만 COSTAR까지 같이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연구팀은 허블의 구면수차를 분석하여 보정해야 하는 값을 계산해냈고 제작, 테스트에 우주비행사들이 수리하는 훈련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그리고 1993년 12월, STS-61 임무로 엔데버호가 허블의 안경을 싣고 우주로 향했다.

무려 5회 연속으로 우주 유영을 하면서 수리해야 했으며 그 시간만 35시간 28분이 소요된 대장정이었다. 허블의 기기를 수정하고 태양전지판 문제까지 한 번에 해결해야 했다. 나사 하나 신중하게 진행된 수리의 결과는 사진을 찍어보기 전까지 알 수 없었다. 시스템 점검, 초점 조절 등 여러 과정을 거치고 1994년 1월. 수리 후 첫 번째 사진이 공개되었다. 그 결과는 기존에 기대했던 바로 그 모습 그대로였다. 망원경에 안경이 정상적으로 달렸다. 인류가 우주를 새롭게 쳐다본 순간이었다.

허블우주망원경은 1990년 발사, 1993년 수리 후 현재까지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기존에 약 15년 정도로 생각했던 사용 기한은 2009년까지 이어진 유인 수리를 통해 획기적으로 늘어났으며 우주망원경의 대표이자 NASA 과학탐사 역사의 상징이 되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블랙홀, 별 탄생, 우주 나이 등 천문학 전 분야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냈으며 아름다운 우주 사진을 통해 대중적으로 친숙해지게 만드는 것에도 큰 역할을 했다. 관측 자료를 활용한 논문만 해도 수만 편이 나왔으며 현재 진행형으로 늘어나고 있다. 언론의 조롱을 받던 애물단지가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장비로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이다.
허블망원경에 이름을 남긴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은 우주의 크기를 획기적으로 확장하고 우주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생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천문학의 역사는 멀어지는 지평선의 역사다.”
실제로 우주에 대한 이해는 더 멀리 있는 천체, 더 보기 힘든 천체를 보면서 확장되어 왔다. 그런 면에서 허블우주망원경은 그 지평선을 압도적으로 멀리 밀어낸 1등 공신이었다. 과도한 자신감과 꼼꼼하지 못했던 검증 작업 등 수많은 난관 속에서도 그 먼 지평선을 보고 싶었던 이들의 노력은 허블의 안경을 통해 꿈을 이뤘다. 이제 허블은 퇴역이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이미 제임스 웹 망원경 같은 후속 우주망원경들이 우주를 열심히 누비고 있는 때이다. 우리는 또 얼마나 멀어진 지평선을 바라보게 될까. 안경 쓴 허블우주망원경이 보여준 감동을 앞으로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참고자료
- 로버트 짐머만. 2008. The Universe in a Mirror: The Saga of the Hubble Space Telescope and the Visionaries Who Built It
- 리처드 파넥 (강성주 역). 2026. 우주를 깨우다. 워터베어프레스
- 코리 파월. 2015. The Many Resurrections of the Hubble Space Telescope. DISCOVER
- 이안 샘플. 2015. The Hubble space telescope: ‘It’s a terrific comeback story’. The Guardian
- 마이크 월. 2015. Hubble Telescope Opened Its Space Eyes 25 Years Ago Today. SPACE.COM
- 제프리 클루거. 2015. The Story of Hubble’s First Photo — 25 Years Later. TIME
- 이재구. 2010. [이재구코너]하늘에 매단 천문대 ‘허블망원경’. ZDNET Korea
- 조혜인. 2020. [프리미엄 리포트]허블우주망원경, 30년의 대기록. 동아사이언스
- 에드윈 첸. 1990. Space Telescope Dealt Setback by Mirror Flaw. Los Angeles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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