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과학사: 타이탄, 깊은 심연 그 아래로.

 1.3m 크기, 300kg이 넘는 무게의 탐사선 본체가 두터운 대기를 뚫고 하강하기 시작했다. 어디로 착륙하는지조차 확실히 알 수 없었던 이 탐사선은 2005년 1월 14일.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에 안착한다. 이 미션 성공으로 인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 행성의 위성에 착륙한 기록을 남기게 된다. NASA와 ESA(유럽우주국), ASI(이탈리아 우주국)이 합작한 하위헌스 탐사선의 이야기였다.

하위헌스 착륙선의 착륙 상상도 (그림: NASA)


 인류가 달을 넘어 저 먼 우주로 탐사선을 보내기 시작한 1900년대 중반. 매리너, 파이어니어같은 탐사 계획이 나름 성공적인 결과물을 가져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계획 중 가장 대단했던 결과물을 가져온 보이저 호의 성공은 후속 탐사 계획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만들어줬다. 보이저 탐사선 두 대가 찍은 외행성계의 모습은 거의 모든 것이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져갔으나 결정적인 아쉬움이 있었다. 두 탐사선 모두 행성을 스쳐 지나갔을 뿐이라는 점이었다. 결국 보이저가 남긴 사진 속 행성의 모습은 또 다른 궁금증을 자아내는 요소가 되었다. 그리고 보이저 1호는 토성 탐사 과정에서 타이탄의 중력을 이용하여 태양계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항로를 이용했다. 타이탄이 보이저 1호가 마지막으로 접근하여 탐사한 태양계 천체가 된 것이다.

보이저 1호가 촬영한 타이탄의 모습 (사진: NASA)


 토성의 위성 타이탄은 다른 어떤 위성보다 특이한 성질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1655년, 네덜란드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였던 크리스티안 하위헌스가 토성의 고리와 함께 이 위성을 처음 발견했다. 갈릴레이가 발견한 목성의 4대 위성 이후로 다른 행성에 찾아낸 5번째 위성이었다. 1944년에는 예측만 있었던 타이탄의 대기 존재를 천문학자 제러드 카이퍼가 분광 연구를 통해 입증해냈다. 표면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대기. 과연 그 대기 안에 무엇이 숨어 있을지 천문학자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보이저 1호가 토성을 떠나고 2년이 지난 1982년, 행성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닌 궤도를 돌면서 탐사하는 궤도선에 대한 제안이 들어왔다. 그중 토성 탐사선의 이름은 카시니로 알려졌는데 이는 실제 장 도미니크 카시니가 파리 천문대 초대 소장이자 토성 연구의 선구자임을 기리는 이유도 있었고 당시 ESA의 핵심 회원국이던 프랑스의 지지를 받기 유리하다는 점도 작용했다. 해당 계획은 유럽뿐 아니라 미국 NASA까지 협력하는 거대 프로젝트로 진화했다.

카시니(좌측)와 하위헌스(우측). 카시니는 토성 연구의 선구자 중 한명으로 고리 사이의 틈을 발견하여 지금도 카시니 간극이라 부른다. 하위헌스는 타이탄의 최초 발견자로 두 사람은 같은 1600년대 천문학자이다.


 초창기 목표는 토성을 탐사하는 카시니 탐사선 한 대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두 대의 같은 우주선을 서로 다른 대상으로 발사하는 것이었다. 혜성 탐사와 토성 탐사를 동시에 진행하려던 이 미션은 CRAF-Cassini (Rendezvous Asteroid Flyby)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같은 구조의 탐사선으로 두 미션을 수행하면 조금 더 경제적이다’라는 모토로 미 의회를 설득해야 했다. 다행히 이 미션의 예산은 NASA의 예산에 포함되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작업중인 하위헌스 탐사선. 하위헌스는 전적으로 ESA가 제작했다. (사진: NASA)


 처음 예상보다 비용이 계속해서 상승했다. 결국 1992년. 혜성으로 향한다고 했던 CRAF 미션은 취소되었다. 다행히 카시니 탐사선은 살아남았지만 계속해서 예산 삭감이 이어졌다. 더 싸고 빠르게 가는 것이 중요하던 1990년대 NASA의 기조에서 카시니 탐사선은 덩치가 너무 컸다. 여러 탐지 기능과 계측 기능의 범위를 줄여 절약을 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던 1994년, 카시니 탐사선의 계획은 완전 취소될 위기에 처했다. 이미 유럽에서는 탐사선에 탑재될 하위헌스 제작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는데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상황이었다. 당시 ESA는 미국 부통령이던 앨 고어에게 편지를 보내 카시니 탐사선의 계획 중단을 취소해달라 촉구하였다. 이 정치적인 힘겨운 줄다리기 끝에 미국 정부는 카시니 탐사선의 운명을 좀 더 이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단순히 미국에서만 진행하는 미션이었다면 모를까 ESA가 이미 제작에 들어간 상태에서 일방적인 취소를 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발사되는 탐사선 (사진: NASA)


 출발부터 만만치 않은 난관을 거친 탐사선은 1997년 10월 15일, 지구를 떠나 토성을 향한 먼 여정을 시작했다. 금성에서 2번, 다시 지구에서 1번, 목성에서 1번 플라이바이 (행성 중력을 이용하여 속도를 높이는 방법)하면서 장장 7년 가까이 되는 여정을 거쳐 2004년 7월 1일. 탐사선은 토성 궤도에 안착하였다. 무려 34억km의 초장거리 여행이였다. 이제 카시니 탐사선은 더 중요한 미션인 타이탄 착륙 작전을 준비해야 했다. 하위헌스 탐사선을 분리하여 천천히 타이탄을 향해 내려가게 해야 했다. 하지만 ESA의 역작이었던 이 하위헌스 탐사선에도 문제가 있었다.

카시니 탐사선 궤도. 여러 행성에서 중력의 도움을 받았다. (사진: NASA)


 첫 번째 문제는 카시니 탐사선이 출발하여 3년이 지난 2000년에 확인되었다. 카시니와 하위헌스 탐사선의 통신 장비를 테스트하던 중 제대로 신호를 주고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착륙선이 분리되어 이동하는 순간 속도에 따라 주파수에 도플러 효과가 적용된다. 움직이는 물체에서 나오는 소리가 가까이 오는지, 멀어지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한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나 오토바이 소리가 대표적 예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카시니 탐사선과 하위헌스 탐사선 사이에 통신을 시도할 때 이 부분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하필 NASA는 이 오류가 발견되기 1년 전인 1999년에만 2대의 화성 탐사선을 박살 낸 전력이 있었다. (특히 화성 기후 궤도선은 도량형 입력 오류라는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원인이었다.) 또다시 거대 자본이 들어간 탐사선을 잃을 수는 없었다.

 아직 토성 도착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엔지니어들은 황급히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해결책은 두 탐사선이 서로 통신이 가능하도록 최대한 도플러 효과를 줄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원래 예정되어 있는 착륙 일정을 뜯어고쳐야 했다. 착륙하는 내내 두 탐사선의 간격과 속도를 재배치했다. 이를 위해 카시니 탐사선은 장시간의 궤도 변경이 필요했다. 하위헌스의 분리 역시 2004년 11월에서 2004년 12월 25일로 연기되었다.

카시니 탐사선이 타이탄과 처음 만난 2004년 10월 26일 모자이크 사진. (사진: NASA)


 2004년 성탄절. 카시니 탐사선에서 하위헌스 착륙선이 분리되었다. 세탁기 크기 정도의 이 착륙선은 3주 동안 천천히 타이탄을 향해 내려갔다. 전원을 아직 켜지 않은 채 타이탄으로 다가가던 착륙선은 대기권에 도달하기 전에 드디어 눈을 떴다. 최대 18000도를 견딜 수 있는 납작한 방열판과 두터운 가스 대기가 만났다. 매우 강력한 빛과 온도로 감싸진 하위헌스는 안전해졌다는 판단이 들자 방열판을 던져내고 타이탄 고도 143km에서 첫 번째 이미지를 촬영했다. 그리고 곧 8.3m의 거대한 낙하산을 펼쳐 하강하기 시작했다. 이 대기를 만나는 모든 순간이 전부 인류 최초였다. 대기의 움직임, 구성 성분 등 다양한 과학 연구 작업에 들어갔다. 착륙하기 전까지 모든 과정이 연구에 쓰이는 매우 소중한 순간이었다.

타이탄 하강 시퀀스 (사진: ESA)


 하강 도중 예상 밖의 회전으로 처음 착륙할 때와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사건도 있었다. 135분 정도로 예측되었던 하강 시간도 바뀐 바람 등의 영향으로 늘어났다. 147분의 하강 끝에 초속 5m의 속도로 표면에 충돌하였다. 12cm의 충돌 구덩이를 만들고 살짝 미끄러진 하위헌스는 무사히 타이탄의 바닥에 안착했다. 분리된 후 3주가 지난 2005년 1월 14일 12시 43분이었다.

하위헌스가 타이탄에 착륙하면서 찍은 사진의 모자이크. (사진: NASA/ESA)
착륙하면서 찍은 사진을 2015년에 공개하기도 했다. 네 사진은 고도가 모두 다르다. (사진: NASA/ESA)


 하위헌스의 착륙 이후에도 문제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2가지 채널을 통해 데이터를 전송해야 했는데 이 중 한 채널이 먹통이 된 것이다. 이 문제 때문에 700장 정도로 예상되었던 이미지가 350장으로 반 토막이 났다. 귀중한 자료가 줄어들긴 했지만 완전히 실패해서 리턴 값이 0이 된 것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착륙선은 착륙 전 해당 위치를 면밀히 따지고 나서 하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하위헌스의 경우 타이탄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고 대기조차 너무 두꺼워 어디에 착륙하는지 마지막까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 이유로 어떤 환경에서도 조금이라도 버티도록 설계를 튼튼하게 해야 했으며 자칫하면 착륙하는 과정만 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탐사선은 착륙 후 90분가량 살아남아 여러 사진과 데이터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신호가 끊겼다.

타이탄에 착륙하여 찍은 첫 컬러 사진. 황량한 모습이 보인다. (사진: ESA)


 하위헌스 탐사선은 타이탄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압도적으로 끌어올리는 1등 공신이 되었다. 타이탄의 두터운 대기를 직접 측정했으며 표면에 거대한 메탄 호수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 위성에 가득한 질소와 메탄이 정말 원시 지구의 그것과 비슷한 것인지 연구할 데이터 덩어리 그 자체였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위헌스가 보낸 자료를 가지고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이 많을 정도니 그 의미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탐사의 의미는 단순히 ‘타이탄’을 봤다는 것에 끝나지 않는다. NASA와 ESA라는 거대 기관의 성공적인 협력이었으며 외계 위성이라는 더 새로운 타깃으로 탐사 범위를 확장시키는 시작이 되었다.

카시니 탐사선이 촬영한 타이탄의 북반구. 액체 메탄 호수에 반사된 빛이 반짝거린다. (사진: NASA)


 앞으로 2028년, NASA는 타이탄에 다시 착륙할 탐사선을 보낼 계획이다. 드래곤플라이라고 이름 붙은 이 탐사선은 단순히 착륙해서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타이탄을 날아다닐 예정이다. 하위헌스가 남긴 자료를 더 확장시키고 화성에 착륙해 비행한 인제뉴어티 드론에 이어 두 번째로 외계의 땅에서 날아다닐 것이다. 이렇게 인류는 더 먼 곳을 향한다. 그 먼 곳을 처음 개척한 하위헌스는 지금도 타이탄의 땅 어딘가에 차갑게 얼어붙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위헌스 호에는 전 세계 사람들의 그림, 메시지가 담긴 CD가 탑재되어 있다. 하위헌스는 자신이 간직한 이 CD를 누군가 회수하여 들어주길 바라고 있지 않을까. (사진: ESA/NASA)

참고자료

  1. Paul Rincon. 2017. ‘Our Saturn years’. BBC
  2. Deborah Netburn. 2017. ‘OK. Let’s do it!’ An oral history of how NASA’s Cassini mission to Saturn came to be. Los Angeles Times
  3. James Oberg. 2005. How Huygens avoided disaster. The Space Review
  4. Ezzy Pearson. 2024. How the Huygens probe landed on Saturn’s largest moon Titan and captured video and images of its surface. BBC Sky at NIGHT MAGAZINE
  5. Nola Taylor Tillman. 2017. 12 Years Later, Scientists Remember Epic Landing on Saturn Moon Titan. SPACE.COM
  6. Korey Haynes. 2018. Touchdown on Titan: How we landed a probe on another planet’s moon. Astronomy.com
  7. Claudio Sollazzo. 2006. The Huygens Probe Mission to Titan: Engineering the Operational Success. AIAA Con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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