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과학사: 타오르는 별빛의 이유

“얘들아 별이 영어로 뭔지 아니?”
“STAR(스타) 잖아요! 그걸 왜 몰라요!”
“사실 별이 영어로 스타인 이유가 있어. ‘스’스로 ‘타’서 빛을 내기 때문이야.”

 천문대에 처음 온 아이들에게 항성과 행성의 차이점을 간단하게 설명할 때 주로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흔히 행성도 한자로 별 성이 들어가 있어 별로 취급하는 글이 종종 있는데 엄연히 다른 천체이다. 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별은 스스로 빛을 내지만 행성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방법이다. 아이들의 이해는 빠를 수 있지만 사실 이런 비유는 엄밀하게 따지면 과학적으로 맞는 예시가 아니다. 별은 불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 하늘 위의 별은 왜 저리 강한 빛을 내뿜고 있는 것일까. 별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우주의 원리를 알아낸 것은 그리 오래된 과거가 아니다.

오리온 별자리의 사진. (의왕어린이천문대 훈남쌤 제공). 무수히 많은 별이 사진 속에서 밝게 빛나고 있다.


 별이 왜 빛을 내는지에 대한 의문은 상당히 긴 역사를 가진다. 고대인들에게 하늘에서 영원토록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별은 신비의 대상이었다. 그들에게 별은 신성성을 지닌 존재였으며 신화적인 것으로 해석하곤 했다. 이집트에서는 별을 사후 세계에 대한 것으로 보고 죽은 자의 영혼으로 인식했다. 고대 그리스 역시 큰 차이는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별이 있는 곳을 불완전한 지구와 달리 완전한 공간으로 설명했다. 에테르로 구성된 완벽한 공간에서 빛을 발하는 것을 별이라 칭한 것이다. 이처럼 별이 빛나는 이유를 철학적, 종교적 이유로 설명하던 것이 고대인의 시선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낙사고라스(그림)는 태양이 빨갛게 된 금속덩어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발언은 불경죄에 해당되어 도시에서 추방되는 일이 벌어진다. 결말은 좋지 않았지만 모든 고대인이 별을 신성하게만 생각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시라 할 수 있다.


 별빛에 대한 이러한 시선은 ‘빛’에 대한 이해가 쌓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17세기 과학 혁명 당시 보여준 뉴턴의 광학부터 빛을 분석하기 시작한 과학자들은 20세기 들어 별의 성분과 별빛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을 품기 시작했다. 1850년대, 독일의 물리학자인 헤르만 폰 헬름홀츠는 태양 같은 별의 에너지원을 설명하기 위해 중력 수축이라는 개념을 꺼내들었다.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기체 덩어리가 점점 수축하면서 중력 위치에너지를 전환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 이론대로 계산하면 태양은 1500만 년 정도의 수명을 가진다. 다만 이 이론은 오래가지 못했다. 약 40년의 시간이 지나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 년 단위라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태양보다 지구가 오래될 수는 없었다. 결국 다른 힘이 있어야 별빛을 설명할 수 있었다.

성운이 중력 수축에 의해 별이 되는 상상도. 실제 초창기 별은 이렇게 생성된다고 보지만 별의 에너지원을 중력 수축으로만 보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다.


 1920년대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였던 영국의 아서 에딩턴은 별의 내부 구성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별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해서 연구를 진행했다. 이 논문에서 그는 방사성 붕괴가 아닌 핵융합이라는 방법으로 에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개념을 보여준다. 다만 그의 계산대로 핵융합이 이어지기에는 태양 핵 온도가 너무 낮아 불가능하다는 반대 의견도 상당했다. (이 반대 의견을 깨부순 것은 에딩턴이 평생 반대했던 양자역학이었다. 양자역학의 터널링 효과가 태양 핵 안에서 확률적으로 핵융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별, 특히 태양 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구성 성분에 관한 문제는 에딩턴 같은 저명한 천문학자뿐 아니라 막 자라나던 새싹인, 그것도 여성이었던 천문학자 세실리아 페인에 의해 완전히 판이 뒤집혔다. 그녀는 박사 학위 논문에서 별의 질량의 대부분은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을 했다. 이는 사실 당시 천문학계가 가지고 있던 별의 구성 성분에 대한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온도가 부족해 일어나기 힘들다고 생각되었던 에딩턴의 핵융합과 달리 무거운 원소의 방사성 붕괴는 별의 에너지원이 될 수 있었다. 이런 생각으로 별의 구성 성분이 무거운 원소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 배경 때문에 해당 연구는 지도 교수였던 헨리 노리스 러셀에 의해 결론을 보류해달라는 의견까지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과학자들의 후속 연구에 의해 그녀의 이론이 정확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제 별은 수소와 헬륨. 매우 가벼운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참 밀고 있던 방사성 붕괴에 의한 에너지도 답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별은 어떻게 저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것인가.

세실리아 페인의 사진. 그녀는 후에 하버드 대학 최초의 여성 학과장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별에서 온 미스터리에 천문학, 물리학계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1920년대 후반, 박사 학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독일의 핵물리학자였던 한스 베테가 있었다. 뛰어난 실력으로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 이탈리아의 페르미 실험실 등에서 활약하던 그는 1932년, 인생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어머니가 유대인이었던 탓에 나치 독일 치하에서 직장을 잃고 만 것이었다. 독일을 떠나 잠시 영국에서 지내던 그에게 바다 건너 미국이 새로운 제안을 건넸다. 코넬 대학의 교수직을 제안받은 것이다. 그렇게 독일의 천재 과학자가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안착을 했다.

한스 베테의 사진


 당시 미국은 그리고 코넬 대학교는 핵물리학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가 교수가 된 1935년은 미국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이론 물리학 컨퍼런스가 처음 열리기도 한 해였다. 이 컨퍼런스는 물리학으로 특별하게 유명하지 않았던 지역에 국제적인 물리학 거물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조지 가모프가 제안한 회의였다. 여러 주제를 다루는 회의였지만 1935년 첫해부터 중요 주제는 핵물리학이었다. 당연히 베테 역시 이 회의에 꾸준히 참여하였다. 그리고 그가 당시 핵물리학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인 별의 에너지에 대해 접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제 4회 컨퍼런스 참석자들의 사진. (사진: 조지 워싱턴 대학) 이 컨퍼런스는 중심 인물이었던 가모프가 우주론으로 연구 분야를 바꾸고 다른 주요 인사들 역시 자리를 옮기면서 1947년 이후 해산하였다.


 미국에서 엄청난 환대를 받고 정착하게 된 베테는 열정적으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계속 핵물리학과 관련된 내용을 토론하던 것의 연장선으로 1938년 별의 에너지 생성이 컨퍼런스 주요 쟁점으로 정해졌다. 사실 베테는 이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전 회의 참석 결과 너무 모호한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훗날 수소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워드 텔러의 설득에 못 이겨 결국 이 4차 회의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1938년 3월, 컨퍼런스에는 베테와 텔러뿐 아니라 가모프, 폰 노이만,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 등 여러 유명 석학들이 모여 있었다.

양성자-양성자 체인의 개념. 수소 4개가 헬륨이 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 회의 전에 이미 별 안에서 벌어지는 것으로 추정되는 반응은 한 가지가 제시되어 있었다. 지금은 양성자-양성자 연쇄 반응이라 부르는 이 현상은 안타깝게도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에 대해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회의가 며칠간 이어지면서 베테는 무언가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기존에 있던 이론들을 조합하여 탄소 순환이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베테는 회의가 끝난 후 자신의 이론을 구체화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태양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양성자-양성자 반응과 탄소 순환 (CNO 순환이라 부른다.) 두 가지 방식으로 모두 설명하는 이론을 완성한다.

CNO 순환의 개념. 처음 사용되는 탄소-12 원자핵이 다시 만들어지면서 순환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탄소 순환에 대한 개념은 바다 건너 베테의 고향인 독일에 남아있던 물리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제커 역시 개별적 연구 끝에 발표를 한 상태였다. 바이츠제커와 해당 연구에 관한 토론을 주고받은 사람 중 한 명이 베테를 물리학 컨퍼런스에 끌어들였던 조지 가모프였다. 그는 두 대륙에서 같은 탄소 순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촉매 역할을 한 셈이었다. 그리고 이 탄소 순환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언급한 논문은 바이츠제커의 것인데 이는 베테가 제출했던 논문을 철회하고 이후에 다시 보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조금 늦게 전달된 논문은 1939년 3월. 피지컬 리뷰에 ‘항성에서 에너지의 생성(Energy Production in Stars)’이라는 이름으로 실리게 된다. 그리고 이 논문은 별이 왜 빛을 내는가에 대한 오래된 질문에 확실한 대답으로 남게 되었다.

카를 폰 바이츠제커의 사진. 전후에는 철학 교수로 활동하였다.


“저기 빛나는 별을 좀 봐요. 오늘 별이 참 아름답네요.”
“정말 예쁘죠! 그런데 그거 아세요? 저는 저 별이 빛나는 이유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랍니다.”

 이 말은 베테가 핵융합 이론을 발표하기 하루 전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해줬다고 하는 유명한 일화이다. (실제로 이때 여자친구와 결혼하여 죽을 때까지 함께했다고 한다.) 미국, 어쩌면 전 세계 최고의 핵물리학자로 뽑히는 베테가 별을 보면서 으스대는 것을 생각하면 뭔가 어색한 느낌도 든다. 이렇게 낭만적으로도 보이는 과학자 베테의 이후 삶은 상당히 숨 가쁘게 흘러갔다.

 그가 논문을 발표한 1939년에서 채 5년도 지나지 않은 1940년대 초반. 베테는 미국 최고의 핵물리학자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핵폭탄 제조 계획인 맨하탄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독일에서 탄소 순환을 연구했던 바이츠제커 역시 독일에서 진행한 핵폭탄 계획에 투입되었으니 핵물리학이 온통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버린 꼴이었다.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에서 사용한 베테의 배지. 그는 이론 부서의 책임자였다.


 기나긴 전쟁이 끝나고 베테는 99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기 전까지 끊임없이 연구 활동을 계속했다. 1967년에는 별이 빛나는 이유를 해결한 1939년의 논문을 쓴 업적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완성한 핵융합 이론은 이후 프레드 호일에 의해 더 무거운 원소의 합성이라는 우주 탄생의 기원으로 뻗어 나가기도 했으며 파괴의 상징이었던 핵분열, 핵폭탄 대신 인공 태양을 만들어 청정에너지를 완성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 최초로 1억도 초고온 플라즈마를 48초 간 유지한 KSTAR 핵융합 연구로. 하지만 아직 핵융합을 에너지원으로 쓰기에는 갈 길이 상당히 멀다.


 단순히 철학적, 종교적 존재였던 별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고작 100년도 지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과학이 신비로움과 낭만을 없앤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베테가 저 하늘의 별이 빛나는 이유를 설명했다고 해서 별이 더 이상 낭만적이고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게 될까? 별은 여전히 빛나고 여전히 신비하다. 그리고 우리는 별을 우리 눈앞으로 가져오려는 핵융합 발전 과제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해는 새로운 신비를 발견하는 길이다. 베테는 그 길을 열었고 우리는 다음 길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뿐이다.

태양역학관측소(SDO)가 찍은 태양의 사진. (사진: NASA)

참고자료

  1. 존 그리빈(권루시안 역). 2021. 과학을 만든 사람들. 진선books
  2. 이광식. 2020. 50, 우주를 알아야 할 시간. 메이트북스
  3. Jason Socrates Bardi. 2008. Landmarks: What Makes the Stars Shine?. American Physical Society
  4. Michael Wiescher. 2018. The History and Impact of the CNO Cycles in Nuclear Astrophysics. Physics in 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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