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8일. 인기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픽사의 29번째 장편 영화가 개봉했다. ‘엘리오’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주인공 소년 엘리오의 성장담을 감동적으로 담고 있다. 항상 그렇듯 우리나라에서 많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픽사의 애니메이션답게 괜찮은 평을 듣고 있는데 마침 이 영화의 주요 배경이 우주였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우주가 배경이 되도록 만드는 키포인트가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를 떠돌고 있는 인류의 유산, 보이저 탐사선의 골든레코드였다.

영화의 초반부부터 보이저 탐사선과 골든레코드는 상당히 멋진 등장을 한다. 전시된 탐사선 모형과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에 홀리듯 빠져버린 어린 주인공은 그때부터 꿈을 꾼다. 우주 어딘가에 있을 우리와 다른 누군가와 만나는 꿈을. 사실 골든레코드의 이야기와 이 레코드판 제작을 주도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어록을 같이 보고 있으면 우주와 외계인에 관한 꿈이 모락모락 피어 나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우주가 낭만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자 그렇다면 영화를 조금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금속판이 담아놓은 감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과연 이 금속판은 무엇을 담고 있을까.

골든레코드는 뭘까?
골든레코드는 1977년 발사된 보이저 탐사선 2대에 실린 금속판을 지칭한다. 보이저 탐사선 이전, 파이어니어 탐사선에도 이러한 금속판을 장착한 적이 있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다시 한번 같은 미션에 도전했다. 약 6개월가량의 짧은 기간 동안 진행된 금속판 제작에는 칼 세이건의 지인들이 주로 참여했다. 그들이 이 금속판에 담은 것은 지구의 사진과 소리, 음악들이었다.

골든레코드의 목표는 단순했다. 저 먼 우주로 떠나는 탐사선에 지구를 소개하는 정보를 담아 우주 어딘가에 있을 외계 지성체들에게 전달하자는 것이었다. 이 미션이 성공하려면 안에 어떤 정보를 담아야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이 판에 담긴 정보가 오래 보존되어야 했다. 1960년대 주로 사용되었던 자기 테이프는 우주여행을 오래 하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지구에서는 하드디스크보다 수명이 더 길어 데이터 장기 저장용으로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우주의 극한 환경에서는 그 장점이 사그라든다. 자기 테이프로는 저 먼 곳까지 정보를 전달하기 어렵다면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그 결과 프랭크 드레이크 박사가 제안한 방식이 채택되었다. 축음기용 LP 판을 제작하자는 계획이었다.
LP 판은 판에 물리적으로 홈을 파 정보를 새기기 때문에 자기 테이프보다 오래 정보를 보관할 수 있다. (물론 물리적으로 박살 나지만 않는다면…) 판 자체의 보호를 위해 금박을 입히고 알루미늄 케이스에 담았다. 케이스는 작은 운석의 충돌에서 판을 보호하기 위함이었고 금 도금은 우주 방사선이나 다른 기체에 반응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노력에 의해 골든레코드는 보이저호가 수명이 다해 우주를 떠돌게 되더라도 계속 살아남아 우주를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속 장면처럼 누군가가 이 탐사선을 수거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골든레코드는 어떻게 해석할까?
아무리 오래 레코드판이 살아남아도 이걸 회수한 외계인이 정작 이 판 속에 담긴 정보를 얻을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들에겐 이 판이 그냥 정체불명의 납작한 물건으로 보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판을 해석할 수 있는 설명서도 같이 동봉되어야 한다. 칼 세이건과 과학자들은 우주 어디에 있는 외계인이건 모두 당연히 알아야 하는 언어를 선정했다. 바로 수학이었다.
지구 안에서도 언어는 나라마다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수를 다루는 방법이 변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걸 부르는 이름만 다를 뿐이다. 1은 어디에서도 1이며 0은 어디에서도 0이다. 수학은 우주 어디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세이건과 드레이크는 이것을 이용해 자료를 저장하려 했다. 그리고 이 판의 설명서를 뒷면에 새겼다.

설명서의 왼쪽 위는 레코드를 어떤 방법으로 재생해야 하는지 그려져 있다. 같이 동봉된 카트리지와 바늘을 돌리는 방식임을 보여준다. 이제 이 판을 어떤 속도로 돌려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오른쪽 아래 두 원과 하나의 직선을 이용한다. 이것은 우주에 제일 많이 존재하는 수소 원자를 상징한다. 수소 원자의 전자 스핀 방향이 반대로 바뀌는 경우를 스핀 플립 전이라 부르는데 이때 21cm 파장의 전파를 방출한다. 이런 스핀 전이 시간은 0.7나노 초이다. 골든레코드에서는 이 수소선의 전이 시간을 기본 시간 단위로 사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레코드 모양의 문양을 둘러싸고 있는 점선은 디스크를 얼마에 한번 회전해야 하는지 2진법 부호로 보여주고 있다. 우주 어디에서도 수소 전이 시간이 동일하다는 것을 이용한 방법이다.
오른쪽 위에 있는 그래프는 레코드에 녹음된 신호를 사진으로 변경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각 사진을 나타내는 그래프를 보여주고 그 그래프를 사진으로 변경하는 주기 역시 작은 점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역시 2진법이다.) 직사각형 안에 표현된 원은 레코드판에 들어간 첫 번째 사진을 보여준다. 외계인이 정확한 방식으로 해석했다면 첫 번째 사진이 이렇게 나올 것이라는 예시 문제의 정답을 보여준 것이다.
마지막으로 왼쪽 아래에 있는 그림은 펄서로 나타낸 지도이다. 아주 정밀한 주기로 맥동하는 펄서를 우주의 기준점으로 삼아 지구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만약 외계인이 이 설명서를 완벽하게 해독할 수 있다면 안에 담긴 여러 음악과 사진, 인사말뿐 아니라 지구의 위치까지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추가로 판 덮개에 순수한 우라늄을 아주 얇게 입혀놨다. 아주 긴 시간 동안 방사능 붕괴를 이어가는 우라늄을 이용하여 이 탐사선이 지구를 떠난 지 얼마나 지났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외계문명은 판에 남은 우라늄 양과 붕괴하여 생성된 납의 양을 분석하여 시간을 알 수 있다.)
지금 골든레코드는 어디에 있나?
이렇게 엄청나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해독해야 하는 골든레코드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큰 난관은 애초에 외계문명의 손에 들어가는 것 자체이다. 우주를 홀로 돌고 있는 외로운 별 태양을 떠나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 보이저 탐사선의 속도로 간다면 약 7만 4천 년의 시간이 걸린다. 현재 우주로 날아간 지 47년째인 보이저호는 어디쯤 도착했을까.

NASA는 아직도 실시간 보이저의 위치를 공유하고 있다. 그 위치를 살펴보면 보이저 1호는 태양으로부터 약 249억km를 넘어섰으며 보이저 2호는 약 208억km를 건너갔다. 이미 이 두 탐사선은 태양풍의 영향을 받는 헬리오 스피어를 벗어났다. NASA는 이것을 기준으로 탐사선이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 공간을 여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물론 여전히 태양의 중력이 미치는 영향권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태양의 중력권 안에 위치한 오르트 구름까지 보이저 1호가 도달하려면 300년~500년 가까이 더 남았다.)
현재 두 대의 보이저 탐사선은 가지고 있는 장비를 거의 정지한 채 우주를 항해하고 있다. 너무 멀어진 거리와 노후화된 장비 탓에 그야말로 간간이 생존 신고만 하는 수준이며 이제 완전히 연락이 끊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희미한 연결도 끊기는 순간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되어 골든레코드를 몸에 품은 채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여행을 이어갈 것이다. 과연 이 레코드판은 칼 세이건과 과학자들의 의도대로 누군가의 손에 들어갈 수 있을까?
엘리오 속에 등장하는 칼 세이건의 어록을 펼쳐보자.
“인류의 아주 오랜 주제이죠. 종교, 민속, 미신, 그리고 이제는 과학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문화에서 어떤 형태로든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외계 생명체를 찾는 건 아주 놀라운 일인데, 사상 처음으로 추측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실제로 해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처 행성에 우주선을 보낼 수 있고, 대형 전파 망원경을 이용해 최근 우리에게 전달된 메시지가 있는지 확인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가장 심오한 관심사를 건드립니다. 우리는 혼자일까요?”
우리가 광활한 우주에 혼자일 것이라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언젠가 골든레코드를 손에 넣을 그들과 우리가 평화롭게 인사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보자.
참고자료
- 엘리오. 매들린 섀러피언 외. 월트 디즈니 픽처스,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2025
- 칼세이건 외(김명남 역). 2016. 지구의 속삭임. 사이언스북스
- 보이저 탐사선의 현재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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