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과학사: 명왕성 최후의 날

 2000년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의 경우 어린 시절 천문학 관련 교양서적을 본 경험이 있다면 익숙한 문장이 하나 있을 것이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이라고 부르는 이 단어 조합은 단순하게 행성의 이름 앞글자를 따서 붙인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이 문장의 길이가 짧아졌다. 마지막 글자인 ‘명’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글자의 주인공은 바로 ‘명왕성’. 그렇다고 명왕성이 정말로 우주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더 이상 행성이 아니게 되어버린 ‘명왕성’의 운명은 2006년 8월 24일. 국제천문연맹(IAU)의 회의에서 결정되었다. 과연 명왕성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행성을 발견한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과학 자들 사이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일로 여겨져왔다. 기존 눈으로 보이는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5개 이외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닌 하나의 행성임을 알게 되었고 1781년에는 영국의 윌리엄 허셜이 망원경으로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이후 천왕성(우라누스)라는 이름이 붙은 이 행성은 천문학자들이 망원경으로 행성을 찾기 위해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천왕성의 궤도에 이상한 점이 발견되자 학자들은 천왕성 바깥에 새로운 행성이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 결과 1846년, 해왕성이 발견되었다.

윌리엄 허셜 초상화. 그는 처음 발견한 행성에 영국왕인 조지3세의 이름을 따려고 했다.


 행성의 발견은 다른 분야에서도 큰 영향을 주었다. 당장 다른 과학 분야인 화학에서 새로 발견한 원소에 행성 이름을 따서 붙였다. 1789년에 독일에서 발견된 새로운 원소에는 당시에 최신 행성이었던 천왕성(우라누스)의 이름을 따 우라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후 1940년에는 해왕성에서 딴 넵튜늄이라는 원소가 발견되었다.) 음악계에서도 영국의 작곡가 구스타브 홀스트가 ‘행성’이라는 제목의 관현악 작품을 발표하였다. 지구를 제외하고 그때까지 알려진 7개 행성을 각각 악장의 주제로 삼았다. 1930년에 개장한 서양 최초의 천체 투영관인 애들러 천체투영관에는 행성 8개를 상징하는 명판이 현관 로비를 장식하고 있었다. 행성은 우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첫 관문이었다.

시카고에 위치한 애들러 천체투영관


 이러한 상황에서 학자들은 새로운 행성, 속칭 X를 찾고 있었다. 천왕성의 궤도 움직임이 이상함을 알아채고 해왕성을 찾았던 것처럼 해왕성 역시 움직임이 이상했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바깥에 또 다른 행성이 있을 것이라 추측한 학자들은 그 바깥에 있을 행성에 플래닛 X라는 이름을 붙였다. 특히나 이런 새로운 행성 찾기에 적극적이었던 곳은 바로 미국이었다. 20세기 초 천문학의 중심지였던 곳은 유럽이었다. 미국 천문학계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높일 기회가 필요했다. 마침 천문학자이자 외교관이었던 퍼시벌 로웰이 플래닛 X 탐색 계획에 큰돈을 투자하였다. 해왕성 궤도 계산 결과에 따른 플래닛 X 가설에 소극적이던 유럽에 비해 적극적으로 달려든 로웰의 노력은 그의 사후에 빛을 봤다.

 1916년 로웰이 사망한 이후 재정적인 문제가 발생하여 잠시 정지되었던 플래닛 X 탐사는 무려 10년이 훌쩍 넘은 1929년 재개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전성기 때에 비해 줄어든 예산 때문에 인력을 많이 투입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망원경으로 별을 보는 것도 아니고 사진 건판을 비교해가며 조금이라도 달라진 부분을 찾아야 하는 지루한 작업에 투입된 사람은 천문학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던 20대 초반의 청년 클라이드 톰보였다. 독학으로 천문학을 공부하고 직접 망원경을 만들어서 관측을 하던 톰보는 자신의 관측 스케치를 로웰 천문대의 대장이었던 베스토 슬라이퍼에게 보냈다. 이 스케치를 받아 본 슬라이퍼는 톰보의 스케치 실력에 감탄하여 그를 플래닛 X 탐사의 적임자로 스카웃하였다. 홀로 방에 앉아 사진 건판과 길고 지루한 싸움을 이어가던 그는 1930년 2월 18일. 궁수자리와 염소자리 경계 부근에서 무언가를 찾아냈다. 플래닛 X. 명왕성의 발견 순간이었다.

젊은 클라이드 톰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발견된 명왕성은 순식간에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행성으로 떠올랐다. 명왕성이 발견된 시기,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미키마우스의 반려견 캐릭터가 첫 등장을 했다. 몇 년 뒤 이 반려견 캐릭터의 이름은 다름 아닌 플루토가 되었다. 디즈니가 공식적으로 명왕성을 감안하고 만든 이름이라고 발표한 적은 없지만 시기상 연관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고 미국의 대중들에게 플루토(명왕성)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미국 학생들한테는 행성 이름을 외우기 위한 영어 문장으로 ‘My Very Educated Mother Just Served Us Nine Pizzas'(교양 많은 우리 엄마가 방금 우리에게 피자 아홉판을 내어주셨어.)가 쓰였다. 각 행성의 알파벳 첫글자를 연결한 단어였다. 미국에 자국에서 발견한 아홉 번째 행성 명왕성은 문화적, 심리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톰보가 명왕성 발견을 위해 사용한 blink comparator 기구. 두 사진 건판을 비교하면서 다른 곳을 찾는 방식이다. (사진: 로웰천문대)


 이런 미국의 사랑과 별개로 명왕성은 발견 이래로 계속 위기에 빠져있었다. 발견 초기 지구 질량의 18배 정도로 추정되었던 것은 시간이 지나 지구 질량의 1퍼센트 이하로 수직 하락하고 말았다. 크기 역시 해왕성 크기에서 달보다 작은 것으로 줄어들어버린 명왕성은 행성이라고 하기에 아쉬운 점이 분명히 있었다. 플래닛 X의 근거가 되었던 해왕성의 궤도 문제는 좀 더 정확한 측정을 한 결과 애초에 잘못된 관측이었다. 명왕성은 해왕성의 궤도에 영향력을 주기에 너무 보잘것없이 작고 연약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명왕성을 행성이라고 말하게 했던 위성 카론의 질량이 명왕성의 약 11%로 상당히 컸다. 행성과 위성의 관계라고 하기에 카론이 너무 묵직했다. 명왕성의 궤도와 구성 성분 역시 그동안 알려진 다른 8개 행성과 매우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너무 찌그러진 궤도, 목성형, 지구형 행성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 명왕성은 그야말로 행성계의 애물단지였다.

명왕성과 다른 행성의 궤도 비교. 다른 행성과 궤도 평면부터 아주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진: NASA)


 명왕성의 위태로운 지위에 가장 결정적인 위협은 1992년 8월. QB1이라는 천체의 발견이었다. 1950년대 천문학자 제라드 카이퍼는 태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작은 소천체들이 원반 모양으로 돌고 있을 것이라 예측했다. QB1은 최초로 발견된 명왕성 바깥 카이퍼대 천체였다. 바로 다음 해인 1993년에는 5개의 카이퍼대 천체가 추가로 발견되었으며 그 뒤로도 꾸준하게 새로운 소천체들이 계속 등장했다. 처음 발견된 QB1의 이름을 따서 큐비원족이라 불리는 이 천체들은 성분부터 명왕성과 상당히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었다. 명왕성은 사실 행성이 아니라 카이퍼대에 위치한 다른 천체들과 비슷한 소천체라고 봐야하는 것이 아닐까?

1992년 발견된 QB1의 사진. (사진: NASA)


 QB1족의 습격이 있었지만 명왕성의 위상은 아직 견고했다. 70년이 넘게 이어져 온 명왕성의 인기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마지막 카운터펀치가 날아왔다. 2005년, 칼텍의 마이클 브라운 박사의 연구팀이 새로운 천체를 발견하였다는 발표를 하였다. 당시 임시로 붙인 이름은 ‘제나’. 훗날 ‘에리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천체였다. 질량과 크기가 무려 명왕성보다 크다고 측정된 이 천체는 (이후 계속된 연구로 인해 명왕성보다 약간 작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동안 카이퍼 벨트 중 가장 큰 천체로 인정받아 행성으로서 명맥을 유지하던 명왕성에게는 날벼락 그 자체였다. 과학자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명왕성보다 크다는 에리스를 행성으로 인정할 것인가? 인정하면 이후에 발견될 이와 비슷한 다른 천체들이 단체로 행성 지위를 받아야 했고 인정하지 않으면 명왕성이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처럼 카이퍼벨트에서 발견된 천체들은 천문학자들에게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던져주었다. 과연 ‘행성’이란 무엇인가?

켁 망원경으로 촬영한 에리스의 모습. 옆에 작은 점은 에리스의 위성 디스노미아이다. (사진: NASA)


 그동안 관념적으로 생각해 온 행성에는 특별한 정의가 없었다. 과학이라는 틀뿐 아니라 대중적으로 훨씬 넓게 인지되어 온 행성은 막연하게 태양계에서 태양 다음의 지위를 가진 존재로 여겨져 왔다. 우리에게 ‘중요하고 대단한’ 존재처럼 여겨졌던 행성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인류가 행성을 관측하기 시작한 후 수 천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이 문제에 가장 민감한 것은 천문학자들이었다. 국제천문연맹(IAU)에서는 여러 토의를 통해 행성의 정의를 만들어내려 했다. 이 목표는 2년의 시간이 흐르도록 달성되지 못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행성 정의 위원회’가 신설되었고 과학자, 언론인, 과학사학자가 포함된 이 그룹은 2006년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천문연맹 회의에서 권고안을 발표했다. 8월 16일에 나온 초안에서는 행성은 태양 주위를 돌며 둥그런 모양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두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이 기준대로라면 명왕성은 그대로 행성이 될 수 있었다! 다만 에리스를 포함한 여러 천체들이 새로운 행성으로 들어와야 했다.

 곧바로 제안된 기준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명왕성을 지키려 했던 미국 천문학자들과 달리(아이러니하게도 명왕성에 제일 큰 위협을 준 에리스의 발견자인 마이크 브라운 박사는 미국 국적이었으며 그 본인도 명왕성의 행성 지위 박탈이 좀 더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지역의 천문학자들은 기준을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었다. 그 결과 8월 24일. 세 번째 기준이 추가된 결의안이 제안되었다. 천체가 자기 궤도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마지막 기준이었다. 이 기준대로라면 명왕성은 행성이 될 수 없었다. 명왕성의 궤도에는 수많은 카이퍼 천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해당 결의안은 최종 투표에 들어갔다. 424명의 투표자 중 90% 이상이 해당 결의안에 찬성했다. 이는 곧 명왕성의 행성 지위 박탈에 찬성한 것이었다. 이 결정으로 인해 우리는 행성을 수십수백 개에서 단 8개로 줄일 수 있었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떻게 모든 천문학자들이 모인 것도 아닌 회의에서 명왕성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냐는 비판하면서 이 정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청원서도 등장했다. 가장 충격을 받은 미국에서는 2개 주가 해당 투표에 반발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명왕성의 발견자인 클라이드 톰보의 고향인 뉴멕시코주에서는 아예 법안을 발의하여 ‘명왕성은 행성이다’라고 못박았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해당 결정이 수많은 교과서와 아이들의 예술작품을 폐기하게 만들었다면서 주의 재정에 피해를 주고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었다면서 국제천문연맹을 규탄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2006년 IAU 총회 당시 투표하는 모습. (사진: 체코 과학 아카데미 천문학 연구소)


 명왕성이 발견되고 행성에서 퇴출되기까지 시간은 76년이었다. 인류 역사에서 1세기도 되지 않는 76년은 상당히 짧은 기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명왕성과 관련된 사건은 단순하게 우주에서 천체를 발견했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문화적, 정치적인 입장도 얽혀있었으며 과학적으로는 ‘용어 정의’라는 아주 기본적인 내용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과학적 용어를 정의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자를 대고 길이 순으로 나눌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몸무게를 기준으로 칼같이 자르는 것도 논란의 여지만 만들 수 있다. 그동안 과학자들조차 큰 고민 없이 사용하던 행성이라는 단어에 제한을 두면서 더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도 있지만 반대로 지금 정해진 정의도 정확하지도 않고 어차피 사람이 만드는 용어인데 행성 개수가 많이 늘어나서 문제 될 것이 있냐는 의견도 있었다. 이런 결말과 관계없이 2006년 8월에 벌어진 이 사건은 단순히 명왕성의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성, 더 나아가 우리 태양계 속 구성원들에게 깊은 생각을 하게 한 지표가 되었다.

뉴호라이즌스 호가 촬영한 명왕성. 명왕성이 퇴출된 2006년 1월. 미국은 자국이 발견한 행성으로 탐사선을 보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뉴호라이즌스를 발사했다. 그리고 1년도 지나지 않아 행성에서 퇴출되었다. (사진: NASA)

참고자료

  1. 마이크 브라운(지웅배 역). 2021.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롤러코스터
  2. 닐 디그래스 타이슨(김유제 역). 2019. 명왕성 연대기. 사이언스북스
  3. 김정욱. 2023. 명왕성은 왜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됐나[김정욱의 별별이야기]. 서울경제
  4. 이창욱. 2021. [잠깐 과학] 명왕성, 행성에서 탈락하다.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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