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과학사: 아인슈타인 노벨상에 얽힌 빛의 두 얼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라 하면 흔히 ‘상대성이론’을 먼저 떠올린다. 인류 역사에 큰 영향력을 남긴 천재의 대표 이론으로 ‘상대성이론’은 손색이 없다. 그만큼 대단하고 영향력 있는 이론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평생 동안 노벨상을 한 개 받은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으로 수상하지 못했다. 그가 1921년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해준 것은 전혀 다른 이론이었다. 그리고 그 이론은 1905년 아인슈타인 기적의 해에서 가장 먼저 작성된 논문. 1905년 3월 18일에 제출된 ‘빛의 발생과 변환에 관한 발견론적 관점에 대하여(Über einen die Erzeugung und Verwandlung des Lichtes betreffenden heuristischen Gesichtspunkt)’ 속에 담겨 있었다.

 빛이란 무엇일까. 아주 먼 과거부터 빛은 신의 존재를 의미했다. 저 하늘에 있는 밝은 태양 자체가 신이었으며 그 신으로부터 나오는 빛은 신성했다. 밝은 빛으로는 숨길 수 있는 것이 없으므로 모든 세상의 정의와 진실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렇게 신성했던 빛을 탐구의 대상으로 보고 연구를 한 것은 고대 그리스부터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인간의 눈 안에 불이 있어 빛이 방출된다고 설명했다. 눈에서 방출된 빛과 태양빛이 만나 상호작용을 하는 것. 이것을 ‘본다’라는 개념으로 생각했다. 지금으로 치면 좀 황당할 수 있는 개념이지만 플라톤까지 이 이론을 지지하고 연구했으니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다.

엠페도클레스의 삽화. 그는 광학 말고도 여러 연구를 진행했으며 4원소설로 가장 유명하다.


 눈에서 나오는 빛에 관한 내용은 긴 시간을 건너 점차 사그라들었다. 아랍의 대학자 이븐 알하이삼의 연구를 통해 빛을 연구하는 방법에 대한 기초가 쌓였다. 렌즈와 거울을 통해 굴절, 반사 등 일반적인 빛의 성질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다. 신의 존재가 실험실로 내려앉은 모습이었다. 시간이 흘러 여러 학자를 거치던 ‘빛 연구’에 관한 공이 17세기의 과학자에게 떨어졌다. 영국을, 더 크게는 인류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장 ‘아이작 뉴턴’이었다.

 뉴턴은 빛이 광원에서 방출되는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반사와 굴절 모두 입자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으로 해석했다. 그는 빛에 관한 연구를 집대성하여 광학(Opticks)라는 이름의 책을 펴낸다. 그의 학자로서의 권위는 학계에 빛의 입자설이 자리 잡는데 큰 영향력을 준다. 다만 이 입자설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실험으로 볼 수 있는 빛의 성질 중 해석이 어려운 것이 있었다.

빛의 간섭무늬. 두 빛의 파동이 서로 합쳐질 때 더 강해지거나 상쇄되어 사라지는 현상을 보인다.
물결의 회절 현상. 좁은 틈으로 들어온 물이 부채꼴 형태로 퍼지고 있다. 전형적인 파동의 성질이며 빛도 이런 모습을 보인다.


 빛은 직진하는 성질이 있다. 그런데 이 빛이 장애물을 만나면 간혹 뒤쪽으로 퍼져나가는 현상을 보인다. 이를 회절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서로 다른 빛이 만나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 반복하는 현상도 존재한다. 이를 지금은 간섭이라 부른다. 뉴턴의 입자설로는 이 두 현상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뉴턴은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빛이 특정 위치에서는 반사되기 쉽고 특정 위치에서는 통과되기 쉽다는 이상한 주장을 한다. 분명 뉴턴의 이론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의 학자로서의 권위는 이런 문제쯤은 찍어누를 수 있었다.

 뉴턴의 권위 덕분에 뉴턴과 동시대에 살았던 네덜란드의 하위헌스가 주장한 이론인 파동설은 곧바로 힘을 얻지 못했다. 하위헌스는 연못에 떨어진 돌이 만드는 파문처럼 빛이 퍼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이론대로면 간섭과 회절 역시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었다. 뉴턴이 세상을 떠난 후 지속된 빛 연구는 하위헌스의 파동이 빛의 진짜 모습이라는 증거만 쌓아왔다. 그리고 그 종지부를 찍은 것은 1864년 제임스 맥스웰이었다. 그는 빛이 전자기 파동이라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정리했다. 그는 전자기 파동의 속도가 빛의 속도와 같다는 것을 계산하여 빛이 전자기 파동의 일종이라는 사실 역시 확인했다. 그리고 이러한 계산 결과는 실험을 통해서도 증명되었다.

맥스웰의 초상화. 그의 이름을 딴 맥스웰 방정식은 연구자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방정식으로 뽑히기도 한다.


 맥스웰의 이론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사람은 독일의 하인리히 헤르츠였다. 1887년, 그는 높은 전압을 코일에 걸어 스파크를 만들고 조금 떨어진 곳에 둔 검출기에서도 스파크가 튀는 것을 발견했다. 전자기파 형태로 빛이 전파되어 가는 것을 직접 확인한 것이다. 자 그렇다면 파동이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실험을 진행한 헤르츠도 그런 줄 알았다. 문제는 실험에서 이상한 현상이 하나 추가로 발견되었다는 점이었다. 헤르츠도 별일 아니라고 넘겼던 현상은 ‘광전효과’였다.

간단한 광전효과의 형태 그림. 빛이 금속에 충돌하자 전자가 나온다.


 헤르츠는 수신기에서 나타나는 스파크가 너무 작아 빛의 종류를 다르게 하여 실험을 진행해 봤다. 이때 자외선이 있을 때 스파크가 더 잘 발생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헤르츠는 왜 빛의 종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이 실험을 확장시킨 것은 그의 제자였던 필립 레나르트였다. 그는 단순히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얻는 것을 목표로 했다. 금속에 빛을 쏘면 금속판에 있는 전자가 에너지를 얻어 튀어나온다. 레나르트는 강한 빛을 쏘면 전자가 많이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빛의 주파수가 달라지면 더 빠르게 높은 에너지를 가진 전자가 튀어나오는 것도 확인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강한 빛을 쐈을 때 전자 수는 많아질지언정 전자의 에너지가 올라가지 않았다. 빛이 파동이라면 빛의 세기가 클 때 전자의 에너지도 커져야 했다.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필립 레나르트의 모습. 그는 1905년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하지만 반유대주의의 선봉장으로 나치의 적극적 옹호자였다.


 과학자들이 빛의 성질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있던 1900년대 초반. 스위스 베른의 특허국에서 일하던 20대 청년 아인슈타인 역시 해당 연구 결과를 인지하고 있었다. 레나르트의 실험 결과를 흥미롭게 보고 있던 아인슈타인에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찾아왔다. 그 열쇠는 1900년 12월. 독일의 막스 플랑크가 주장한 에너지의 ‘양자화’였다. 플랑크의 이론에 따르면 에너지는 연속적이지 않고 양자화되어 있었다. (물론 정작 플랑크는 본인의 연구 결과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렇다면 빛 역시 연속적인 파동이 아니라 입자의 개념으로 본다면? 레나르트의 연구 결과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인슈타인의 생각은 이 두 연구를 합치면서 구체화되었다. 그는 빛을 양자화 시켰고 ‘광자’라는 개념을 통해 실험을 설명했다. (사실 광자라는 단어 자체는 아인슈타인 이후 한참 지나 1926년에 첫 등장하기는 한다.) 광자 하나가 전자 하나를 때려 방출시키므로 빛이 강하면 그만큼 광자가 많으니 자연스럽게 전자도 많은 개수가 나온다. 전자의 에너지의 경우 광자의 에너지와 관련이 있다. 색(주파수)에 따라 광자의 에너지가 다르니 튀어나온 전자의 에너지도 다른 것이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마치 빛은 원래 입자였다는 듯 광전 효과를 성공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이 내용을 담은 논문이 ‘빛의 발생과 변환에 관한 발견론적 관점에 대하여’였다.

 무명의 과학자 지망생 아인슈타인의 첫 논문은 파격적이었다. 당대 학자들이 모두 인정하던 파동설을 깨고 뉴턴 이후 밀리던 입자라는 이름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당연하게도 주류 학계에서 광양자가설이 인정받기는 쉽지 않았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론의 창시자인 플랑크조차 빛을 양자화시킨 아인슈타인의 개념에 동의하지 않았다. 아마 이러한 반발을 아인슈타인 본인도 예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논문의 제목에 들어가는 ‘발견적’이라는 내용은 특정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가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실제 논문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이론이 빛의 파동설을 부정하고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빛이 입자라고 하면서 파동이라는 것도 유지한다? 그는 때에 따라서 빛이 입자와 파동을 넘나드는 방식으로 설명했다. 의도했건 안 했건 이는 빛에 이중적인 성질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바였다.

 이 광양자 가설을 시작으로 이어진 1905년 기적의 해에는 아인슈타인을 세계적인 스타로 끌어올린 ‘상대성이론’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막스 플랑크는 이 젊은 특허국 직원을 학계로 끌어들였고 독일 과학계의 주류로 만들었다. 문제는 급작스럽게 올라간 만큼 그 반대급부로 아인슈타인을 공격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는 점이었다. 시간의 절대성을 부순 상대성이론과 빛 파동설을 위협한 광양자가설은 당대 학자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왔다. 특히 실험을 중시하는 물리학자들은 실험 없이 생각으로만 진행한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여기에 유럽의 정치적 상황까지 이상하게 돌아갔다. 국가주의가 강화되고 반유대주의까지 돌기 시작한 독일에서 평화주의자이자 유대인이던 아인슈타인은 아주 적절한 공격 대상이었다.

1920년의 아인슈타인 모습. 이미 슈퍼스타였지만 외부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고 있던 시기였다.


 특히나 아인슈타인을 적극적으로 공격한 선봉장은 다름 아닌 광전효과를 실험적으로 보여줬던 레나르트였다. 그는 상대성이론은 유대인 물리학이라며 맹비난했다. 아인슈타인도 이러한 공격에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매체를 통해 공개적으로 반박하기도 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은 노벨상 수상에서도 드러났다. 노벨상 수상자로 아인슈타인이 지속적으로 추천되었음에도 정작 수상에는 번번이 실패하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상대성 이론이 정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1919년, 에딩턴이 일식 관측으로 상대성이론을 증명하자 더 이상의 변명거리가 없어졌다. 이제는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목에 걸어야 할 때가 왔다.

 반대파의 노력은 끈질겼다. 에딩턴의 관측 자료 신빙성이 문제가 되었다. 계속해서 상대성이론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다 1921년. 아예 노벨상 수상자가 선정되지 않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만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노벨상 위원회 회원들은 아인슈타인의 수상 업적을 상대성이론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것이 바로 광전 효과였다. 마침 1916년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밀리컨이 실험을 통해 아인슈타인의 예측을 확인하기도 했다. 밀리컨은 실험을 통해 전자의 최대 에너지가 빛의 주파수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는 아인슈타인의 식이 정확했음을 의미했다.

로버트 밀리컨의 모습. 그는 1923년 노벨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점차 아인슈타인의 말이 검증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부정적인 학자들은 많았다. 심지어 밀리컨조차도 실험을 본인이 직접 했지만 여전히 광양자 가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광양자 가설이 아니라 조금 더 변형된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그 결과 위원회는 광양자가설 이론이 아니라 ‘광전 효과’를 성공적으로 설명해냈다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온몸을 비틀어서라도 반대파를 누르고 아인슈타인에게 노벨상을 수여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1921년 노벨상 수상자가 된다. 정작 수상은 1922년 수상자인 닐스 보어와 함께 수상하게 되었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은 다른 일정 때문에 상을 직접 받지도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업적과 위상을 생각하면 정말 험난한 과정 끝에 거둔 결실이었다.

1923년에 열린 아인슈타인의 노벨상 강연. 그는 광전 효과로 상을 받았음에도 강연은 상대성이론으로 진행했다.


 아인슈타인은 당대 학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혁신을 통해 과학의 역사에 거대한 한 획을 그었다. 다만 재미있는 점은 그가 젊은 시절 기성학자들과 대결했던 것을 나이가 들고 나서 반대 방향으로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플랑크가 자신의 이론으로 시작된 광양자가설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인슈타인도 광양자 가설 이후 본격적으로 태동한 양자역학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가 노벨상 수상을 양자역학의 대가 닐스 보어와 함께 했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마치 빛이 이중성을 보이는 것처럼 아인슈타인조차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 같다. 이처럼 빛의 이중성에 얽힌 과학자들의 오랜 대결은 인간의 이중성도 함께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같이 들어있다.

참고자료

  1. 월터 아이작슨 (이덕환 역). 2014.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 까치
  2. 만지트 쿠마르 (이덕환 역). 2014. 양자혁명: 양자물리학 100년사. 까치
  3. 박민아. 2020. [과학의 결정적 순간들] 1888년 9월, 맥스웰주의자들이 승리를 선언한 날. HORIZON
  4. 박민아. 2021. [과학의 결정적 순간들] 1923년 밀리컨이 광전효과로 노벨상을 수상했을 때. HORIZON
  5. 이재탁. 2022. [Editor Choice] 왜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지 못했나. 테크튜브
  6. 이종필. 2021. [사이언스N사피엔스]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받은 업적 ‘광전효과’.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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