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우주의 분자들로 하겠습니다. 근데 이제 약간 냄새를 곁들인



여름이 되면 찾아오는 건 더위뿐만이 아닙니다. 장마철의 잘 마르지 않은 빨래에서 나는 ‘이것’, 그리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에어컨에서 나는 ‘이것’! 더위만큼이나 우리를 불쾌하게 만드는 ‘이것’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바로 냄새입니다. 우주에서 냄새를 맡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발견한 물질들을 구현하여 우주의 냄새를 알아냈어요. 어떤 냄새들을 맡을 수 있을지 알아보시죠!



은하의 중심에서 흘러나오는 라즈베리의 향기



지구에서 약 2만 6천 광년을 가면 우리 은하의 중심 근처에는 궁수자리 B2라고 불리는 거대한 분자 구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얼마나 거대하냐면, 직경이 무려 130 광년이나 되고, 태양보다 100만 배 이상 무겁죠출처. 이 분자 구름은 여러 가지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천문학자들은 이 거대한 구름에 메탄올과 에탄올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메탄올은 알코올램프 연료로 쓰이기도 하는 해로운 물질이지만 에탄올은 술이나 화장품에도 들어가는 친숙한 물질이죠. 궁수자리 B2에서 메탄올을 잘 제거한다면 어마어마한 양의 술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궁수자리 B2의 모습(이미지: 유럽 우주국 ESO)



2009년, 과학자들은 궁수자리 B2에서 포름산 에틸(Ethyl formate)이란 분자를 발견했습니다출처.이 물질에서는 라즈베리의 향기가 난대요. 에탄올과 포름산 에틸이 섞인 궁수자리 B2에서는…? 라즈베리 럼(rum)의 맛을 느낄 수 있겠네요! 분자 구름 사이를 헤엄치며 라즈베리 럼을 맛보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궁수자리 B2에는 메탄올과 부티로니트릴(Butyronitrile 또는 propyl cyanide)이라는 해로운 물질도 섞여 있어 절대 금물입니다. 애초에 궁수자리 B2까지 갈 수도 없지만요.





이게 무슨 냄새야? 냄새 집합소 타이탄



토성의 위성, 타이탄의 모습(이미지: NASA)

토성의 가장 큰 위성인 타이탄의 대기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천문학자들은 토성 탐사선 카시니 호의 타이탄 조사 결과를 통해 타이탄의 대기에 어떤 분자들이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이들은 타이탄의 대기에 있는 것과 같은 물질이 나올 때까지 실험실에서 계속 합성물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실험을 소개한 NASA의 한 글에서는 ‘케익 한 조각을 먹고 그 맛을 똑같이 구현해내는 일출처’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어요. 그치만 실제로 타이탄 대기의 냄새를 맡은 건 아니니, 케익의 맛을 구현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오렌지 색 타이탄에선 어떤 냄새가 날까요? 타이탄의 대기에는 수소나 일산화탄소, 에테인처럼 무향의 물질들도 있지만, 달콤한 머스크 향이 나는 알켄(alkene), 달콤한 향기가 나는 아세토니트릴, 프로핀, 씁쓸한 아몬드 향이 나는 시안화수소(유독물질이니 냄새를 맡는 건 금물!), 더러운 화장실에서 풍기는 냄새의 주인공인 암모니아, 휘발유 냄새 비슷한 벤젠 등이 있다고 밝혔어요.



2020년 11월에는 타이탄의 대기에서 ‘사이클로프로페닐리덴(Cyclopropenylidene, C3H)’라는 분자를 추가로 발견하기도 했어요. 이 분자 역시 냄새가 나는 족인데, 아쉽게도 냄새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어요.



정말로 타이탄에서 이런 냄새들이 날까요? (그것도 섞여서…?) NASA는 2026년, 타이탄으로 ‘드래곤플라이(https://www.nasa.gov/dragonfly/dragonfly-overview/index.html)’라는 이름의 탐사선을 보낼 예정입니다. 드래곤플라이가 타이탄의 대기에 숨은 비밀을 밝혀주길 기대해봅니다.





야…너두? 달에 간 우주비행사들이 맡은 이 냄새는?



달 표면에서 작업 중인 우주인(이미지: NASA)

달의 표면을 덮은 흙은 지구의 흙과 매우 달라요. 운석과 충돌한 달의 표면은 유리조각처럼 날카로운 가장자리를 가진 알갱이가 됩니다. 그런데 달에는 대기나 물이 없어서 가장자리가 부드럽게 깎여 나가지 않고 날카로운 상태가 유지되죠. 달 먼지의 크기는 약 0.02mm 정도로, 아주 작고 날카로운 유리 조각으로 생각하면 돼요. 달 먼지들은 우주복과 신발에 아주 잘 엉겨 붙는데, 아무리 먼지를 잘 털고 들어와도 우주선 안으로 따라 들어오게 돼요. 그럼 달 먼지가 우주선 안을 떠다니게 되겠죠!관련자료 아폴로 17호의 우주비행사였던 잭 슈미트는 달 먼지 때문에 지구 밖에서 최초로 고초열(꽃가루가 점막을 자극하여 일어나는 알레르기. 결막염, 비염, 천식 따위의 증상이 나타난다)을 겪었어요. 우주선에 떠다니던 달 먼지가 코의 점막에 달라붙었기 때문이죠.



잭 슈미트를 제외한 다른 우주비행사들은 큰 증상을 느끼지 못했지만, 그들은 달 먼지에 대해 비슷한 말을 남겼습니다. 바로 달의 먼지에서 ‘화약’ 냄새가 났다는 것이죠! 화약에는 니트로셀룰로오스와 니트로글리세린이 섞여있는데, 달 먼지를 이루는 원소는 이산화 규소, 철, 칼슘, 마그네슘 등으로 화약에 들어간 물질과는 전혀 관련이 없대요. 그런데도 모두가 화약 냄새를 맡았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출처.


더 신기한 사실은 지구에 도착한 달 탐사선에선 화약 냄새가 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달 먼지가 우주선 안으로 들어오면서 우주선 안의 산소와 반응하면서 화약 비슷한 냄새가 났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답니다.

달의 흙과 돌(이미지: NASA)


2020년 여름에는 달에 다녀온 우주비행사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비슷한 향을 구현한 향수가 출시되기도 했어요! 화약 냄새가 나는 향수라니… 궁금하기도 하지만 매일 뿌리기에는 어려울 것 같기도 하네요…(광고 아님!)




냄새가 나는 물질들은 대부분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물질들을 우주에서 발견했다는 것은, 냄새가 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졌던 우주에서 발견한 복잡한 분자는 생명체로 가는 과정일 수도 있거든요. 덜 마른 빨래와 오랫동안 방치된 에어컨에서 나는 악취는 빨리 해결해야겠지만, 우주에서 악취를 만나면 반가워해주세요. 우리는 또 우주에서 어떤 냄새를 맡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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