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1월 20일. 카자흐스탄에 위치한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화려한 불꽃과 함께 로켓이 발사되었다. 이 로켓에 탑재되어 있던 것은 길이 12.56m, 무게 19.3t, 직경 4.11m 정도의 원통형 비행체였다. 러시아어로 “새벽”이라는 뜻인 “자리야”라고 불리는 이 비행체는 1998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집 역할을 하는 국제우주정거장. ISS의 첫 출발이었다.

1960년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미국과 소련의 달탐사 우주경쟁이 아폴로 11호를 통해 미국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그전까지 미국보다 한발 빠르게 인공위성을 발사하고 유인우주선을 발사하면서 앞서나가던 소련은 패자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있었다. 기존에 진행 중이던 달착륙 계획을 모두 취소한 소련은 다른 방식으로 우주개발을 이어가려 했다. 이미 개발해놓은 우주선도 있었고 우주에서 완전히 발을 빼기에는 소련도 그동안 투자한 금액과 시간, 노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늪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그리하여 찾아낸 차선책은 바로 우주정거장이었다.

소련의 우주정거장 계획인 살류트 프로그램은 1971년 4월, 살류트 1호를 발사하면서 첫발을 내디뎠다. 175일 동안 지구 주변을 돌았던 이 세계 최초의 우주정거장에는 23일 동안 사람이 살았다. 또다시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은 소련이었지만 이 우주정거장 체류는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소유즈 11호에 타고 샬류트 우주정거장에 도착해 살았던 우주인 3명, 게오르기 도브로볼스키, 블라디슬라프 볼코프, 빅토르 파차예프는 23일의 미션을 끝내고 지구 귀환길에 올랐다. 하지만 기다리고 있던 구조대가 목격한 것은 살아있는 우주 영웅의 귀환이 아니었다. 세 사람은 모두 질식사한 채로 발견되었다.

돌아오는 소유즈 11호 안에서는 환기 밸브가 충격으로 열리는 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로 인해 선내 공기가 다 빠져나가면서 압력에 문제가 생겼고 우주비행사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였다. 마침 좁은 우주선 안에 3명이 다닥다닥 붙어서 탑승해야 했던 관계로 우주복을 입지 않고 있었는데 이 사건 이후로 우주선 발사 및 귀환에는 모두 우주복을 입은 채로 진행하게 되었다. 소련은 이 사건의 여파로 한동안 우주선의 발사를 중지시키기도 했다.

소련이 우주정거장으로 집중하고 있을 시기, 달착륙으로 승리한 미국 역시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기 전부터 미션을 성공한 이후 깎여나갈 예산을 방지하고자 우주선을 이용한 다른 미션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마침 아폴로 미션의 일부가 취소되면서 만들어놨던 로켓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달에 가려고 했던 새턴V 로켓은 미국 최초의 우주정거장 스카이랩을 위해 발사대에 섰다. 1973년 발사된 스카이랩은 소련의 살류트보다 훨씬 거대한 몸집을 지니고 있었다. 내부 거주 공간만 해도 3배에 달했으며 실험실 공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구조였다. 미국은 우주에서 체류하는 시간 기록을 84일로 경신하면서 소련에 자신들의 위력을 과시했다.


사망 사고에 이어 기록까지 미국에 빼앗긴 소련은 꾸준히 후속 우주정거장을 발사했다. 다만 발사 과정에서 실패하거나 궤도에 올렸음에도 기기 오류로 사람이 접근하지 못한 사례가 반복되었다. 미국에 비해 부족한 예산과 역시나 성능에서 뒤처지는 로켓으로 인해 커다란 우주정거장 발사가 어려웠던 소련은 획기적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작은 조각을 발사하여 우주에서 조립하는 방법이었다. 살류트 4호, 5호부터 년 단위로 우주정거장을 운용하고 우주에서 도킹하는 기술의 안정성을 확인한 소련은 1986년 2월. 새로운 우주정거장의 조각을 우주로 발사했다. ‘미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우주정거장은 바로 다음 달인 3월. 두 번째 모듈을 결합하면서 우주에서 건설을 시작했다. 소련은 당시에 아직 현역이던 살류트 7호와 함께 미르에서도 우주인들의 활동을 시작했다. 다시 우주정거장과 관련된 기록을 미르가 다 다시 갈아치우기 시작했다.

소련이 열심히 우주정거장을 쏘아 올리면서 기술을 축적하고 있던 시기. 미국은 또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우주왕복선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온 힘을 다한 터라 우주정거장 스카이랩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거기다 1979년 스카이랩이 추락하면서 전 세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 대기권에서 불타면서 사라졌지만 일부 조각이 남아 호주에 그 잔해가 떨어지는 일도 벌어졌다. (당시 이 문제로 잔해가 떨어진 호주 에스퍼런스 지역 지자체가 미국 정부에 쓰레기 투기 명목으로 400달러의 벌금을 청구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이 미르 우주정거장 계획을 발표하고 준비하자 미국도 질 수 없다는 심정으로 새로운 우주정거장 계획을 발표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 계획을 발표하면서 “다음으로 진행해야 하는 논리적 단계”라고 설명했다. 우주왕복선이 만들어졌으니 이를 통해 가야 할 목적지를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그 계획의 이름은 ‘프리덤 프로젝트’였다.

야심찬 출발과 달리 프리덤 프로젝트는 끊임없이 걸림돌에 걸리면서 헤매고 있었다. 110m가 넘는 거대한 우주정거장을 여러 조각의 모듈로 나눠서 발사하는 것은 소련이 미르를 준비하면서 진행했던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문제는 크기가 너무 컸다. 계속된 비용 초과와 설계 변경이 이어졌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폭발하는 참사가 발생하면서 NASA가 진행하는 우주 미션이 사실상 멈춰버렸다. 프리덤 역시 안전 재평가를 실시하면서 또다시 시간이 끌리게 되었다.
예산 압박이 점점 더 심해지자 미국 혼자서 프리덤 우주정거장을 건설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어 보였다. 이에 유럽, 일본, 캐나다 등의 나라와 협력하여 진행하는 방식이 논의되었다. 그럼에도 발사 계획은 조금씩 뒤로 밀려났고 결국 1990년대, 책정된 예산이 삭감되면서 미국의 야심찬 거대 우주정거장은 발사조차 못하고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심지어 1993년 미 하원에서 우주정거장 계획의 중지에 관련된 법안이 매우 근소한 차이로 부결되는 일도 벌어졌다. 마침 당시 새로운 대통령이 된 클린턴 대통령은 우주정거장 계획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기존 ‘프리덤’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 것은 더 이상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렇게 눈을 돌린 곳은 미국의 숙적이 있었다.
미르 우주정거장으로 해당 분야의 선두권을 질주하고 있던 소련은 어쩌면 미국보다 더 큰 위기에 빠져있었다. 우주 개발이 문제가 아니라 ‘나라가 없어져 버렸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는 거대한 사건이 발생한 당시 러시아는 우주개발에 막대한 돈을 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미 우주에 올라가있는 미르 역시 유지비를 만만치 않게 잡아먹고 있었다. 결국 두 나라 모두 예산이라는 발목에 잡혀 있었다. 그 결과 미국과 소련,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줄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심지어 두 나라는 이전에 한번 우주 관련 협력을 진행한 적도 있었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고 한참 살류트와 스카이랩을 준비하고 있던 1969년, 미국과 소련은 서로 협력하여 우주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오히려 달착륙에 미국이 성공하면서 경쟁 체제에서 협력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더 수월해졌다. 그렇게 손을 잡은 두 나라는 아폴로 우주선과 소유즈 우주선을 우주에서 도킹하는 미션을 생각해냈다. 여전히 두 나라 사이에 앙금이 있는 관계로 각자의 우주선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평하는 등 약간의 걸림돌이 있었지만 1975년 7월. 역사적인 도킹에 성공했다.

아폴로-소유즈 미션은 1회성 협력으로 그 이후 지속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미션은 시간이 흘러 우주정거장이라는 공통 목표를 바라보는 두 나라에 좋은 선례가 되었다. 냉전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리라 기대받던 시기, 우주에서 두 나라가 협력을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좋은 사례로 남을 수 있었다. 미국은 프리덤을 제작하기 위해 준비하던 것들을, 소련은 미르의 후속 정거장을 준비하면서 남겨놓았던 것들을 꺼내들었다. 1993년 9월. 미국과 러시아는 새 우주 정거장을 합동 제작하기로 공식 발표하였다.

새로 추진되는 우주정거장 프로젝트에는 미국과 러시아 말고도 캐나다, 일본, 브라질, 그리고 유럽우주국 소속의 11개 나라(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영국)가 참여했다. 범국제적인 프로젝트로 진화한 만큼 이름에도 변화가 있었다. International Space Station(ISS). 국제우주정거장의 출발이었다. 설계 초반에는 각 나라별로 달랐던 규격을 통일시키고 세계 곳곳에서 모듈 조립을 준비했다. 이중 처음 발사될 모듈은 러시아가 개발하기로 합의하였다. 다만 재정적인 문제가 있었던 만큼 제작 비용은 NASA에서 부담하였다. 그렇게 제작된 모듈이 ISS의 첫 번째 모듈인 ‘자리야’였다.

1998년 11월을 시작으로 같은 해 12월 우주왕복선 엔데버호에 실린 미국의 모듈 유니티가 발사되어 도킹에 성공했다. 거대한 모듈은 우주왕복선을 이용하여 수송했으며 유럽우주국의 ‘콜롬버스’, 일본 우주국의 ‘키보’, 캐나다에서 제작한 로봇팔 등이 순조롭게 도킹에 성공하였다. 2003년 콜롬버스 우주왕복선 폭발 사고가 벌어지면서 ISS의 조립도 일시 정지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2005년으로 계획되었던 완공은 시간이 밀려 2011년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의 비행을 끝으로 주요 구조물 조립이 모두 완료되었다. 10년이 넘는 우주 대공사의 마무리였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은 달탐사라는 거대한 빛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까지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달에 착륙한 이후의 목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비교적 적다. 11호를 기점으로 그 이전에 치열한 경쟁이었다면 이후 벌어진 우주개발의 흐름은 거대한 우주정거장으로 이어져 왔다. ISS는 지금까지도 인류의 가장 거대하고 멀리 떨어진 우주 전초기지 역할을 확실히 해나가고 있다. 과학적으로도 지구에서 할 수 없는 실험을 중심으로 무려 3000개가 넘는 실험이 진행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의학, 생물학적인 연구 성과를 많이 만들어냈다. 암, 알츠하이머 같은 병의 연구를 함에 있어서 ISS의 미세 중력은 큰 도움을 주었다. 천문학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지구 자기장, 지구 대기를 가까이서 확인하고 분석할 수 있었으며 우주에서 날아오는 각종 신호를 분석하는 것도 가능했다.

외교적으로도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냉전이 종식되고 새로운 세계 질서를 유지함에 있어 가장 상징적인 구조물이라 할 수 있었다. 넓은 지상이 아닌 좁은 우주정거장 공간 속에서는 사람의 국적은 무의미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비행사들은 서로 일상을 공유하면서 친밀해졌으며 실제 비상 상황 시 서로의 구역으로 대피하는 매뉴얼이 있을 정도로 상호 의존적인 공간이 되었다. 또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ISS를 방문하여 우주에 대한 관심을 끌어주는데 공을 세우기도 했다. (우리나라 역시 이소연 박사가 최초의 우주인이 되어 머문 곳이 이 ISS였다.)
다만 지금 ISS는 발사된 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처음 설계 당시 수명을 15년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그 시기가 훌쩍 지났다. 이러한 부품을 교환하고 궤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유지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NASA는 ISS의 수명을 2030년가량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 이후로 추가 연장이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거기에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ISS 운영 관련으로도 미국과 러시아가 서로 갈라서려는 제스쳐를 취하는 등 외교적인 위협까지 찾아왔었다. 과연 ISS는 언제까지 우리의 머리 위를 날 수 있을지 확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볼 수 있다.
구약성경에는 바벨탑이라는 유명한 탑이 하나 등장한다. 하늘에 오르기 위해 인류가 힘을 합쳐 쌓았던 거대한 탑은 신의 분노를 받아 무너졌고 다시 하나로 힘을 합치지 못하도록 여러 언어가 세상에 등장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자체는 신에게 도전하려는 인간의 교만을 보여주는 내용이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인간이 힘을 합쳤을 때 저 하늘까지 탑을 쌓아 신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으로도 보인다. 인류는 결국 탑을 쌓아 하늘에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하늘에 거대한 구조물을 만드는 것에는 성공했다. 세계가 협력하여 만든 저 하늘의 거대 구조물. ISS는 어쩌면 현대판 바벨탑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결말이 성경 속 바벨탑처럼 비극으로 끝나지 않도록 붙잡은 손을 놓지 않고 협력을 이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각 나라의 국적 이전에 똑같이 지구에 사는 인간임을 저 하늘의 ISS가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참고자료
- 데이브 윌리엄스(강주헌 역). 2024. 나사는 어떻게 일하는가. 현대지성
- 닐 디그래스 타이슨(박병철 역). 2016. 스페이스 크로니클. 부키
- 크리스토퍼 완제크(고현석 역). 2021. 스페이스 러시. 메디치미디어
- 주현준. 2019. 역사] 러시아 우주 정거장 살류트 7(Salyut-7)의 과정. 문화뉴스
- 2021. 인류거주 20년, 우주정거장에서는 어떤 실험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 NASA 국제우주정거장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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